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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용, 이해의 힘[오늘과 내일/윤승옥]

입력 | 2019-06-14 03:00:00

지시 아닌 이해로 선수 움직여…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리더십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벼락 스타가 된 정정용 감독(U-20 축구 대표팀)이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린 건 2016년이다. 2017년 U-20 월드컵 출전을 준비하던 대표팀이 2016년 10월 아시아 대회에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승우(이탈리아 베로나), 백승호(스페인 지로나) 등 특급 선수들을 보유한 팀이었으니, 청천벽력이 따로 없었다. 패배에 따른 책임으로 사령탑은 공석이 됐고, 무명 정 감독이 구원투수로 긴급 호출됐다.

임시 수장으로 팀을 이끈 정 감독은 그해 11월 수원컵 국제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불과 한 달 만의 반전이었다. 드라마틱했다. 선수 구성이 달라진 건 아니었고, 활용이 달랐을 뿐이다. 특히 개성 강한 이승우가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게 하고, 또 다른 선수들과도 잘 어울리게 했다. 서로 겉돌던 팀이 한 덩어리가 됐다.

정 감독은 이를 두고, 지시가 아닌 ‘이해시키는 것’의 힘이라고 했다.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가 있다. 2013년, 정 감독은 이승우에게 등번호 20번을 줬다. 스트라이커의 번호인 10번을 당연히 받을 줄 알았던 이승우는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정 감독이 왜 그러냐고 했더니, 등번호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답했다.

정 감독이 과거 지도자처럼 “지시한 대로 하라”고 했다면, 아마도 오해와 반발만 컸을 것이다. 정 감독의 대처는 달랐다. “네가 9번(공격수 등번호)을 달고 수비를 할 수 있겠니. 아니면 5번(수비수 등번호)을 달고 공격을 할 수 있겠니. 20번을 달면 어디서든 뛸 수 있다.”

설명을 듣고 난 이승우는 “아, 그런 의미가 있네요”라며 바로 수긍했다. 나중에 정 감독이 20번 달고 뛰어 보니 어떠냐고 묻자 “(숫자가 커서) 조금 무겁긴 해요”라며 씩 웃었단다. 정 감독은 그때 개성 강한 어린 선수들은 이해(납득)시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그 경험을 통해 2016년 반전 스토리를 쓸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물론 이승우에게만 해당된 얘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승우 대신 이강인이 주축이 된 이번 U-20 대표팀은 더욱 진화한 모습이다. 정 감독은 이해의 과정을 정서적 목적에만 한정하지 않고, 전술적인 부분까지 확장했다. 이번 대표팀은 경기마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 전반에는 3-5-2 포메이션을 썼다가, 후반에는 4-3-3으로 전환한다. 매 경기 다른 전술을 가동했다.

정 감독은 다채로운 전술을 위해 지난해 아시아 챔피언십 때 전술 노트를 나눠줬다. 포메이션을 왜 바꿔야 하는지, 또 포메이션에 맞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이해시켰다. 과거 지도자처럼 “시키는 대로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포메이션이 같더라도, 포지션별 역할도 다르게 부여했으니 상당히 복잡한 공정이었다. 너무 복잡하면 실전에서 자칫 부작용만 크다. 하지만 이해를 기반으로 한 의사소통 덕인지, 우리 대표팀은 오차 없이 움직였다.

그의 ‘이해’는 단순한 소통 방식이 아니다. 실질적인 내용을 동반한다. 무명이었던 정 감독은 실업무대에서 선수로 뛸 때부터 대학원에 다니며 축구 이론을 공부했다. 박사과정 때는 스포츠생리학을 전공했다. 현란한 전술을 펼치고, 트레이닝 전문 코치와 함께 선수들의 컨디셔닝을 최적의 상태로 이끈 밑천이었다. 선수들은 증명이 돼야 진정으로 따른다. 그는 증명했다. 이름값을 앞세워 ‘지시’만으로 리더십을 행사한 이들보다 더 큰 성취를 한 이유다.

축구로만 한정할 일이 아니다. 정 감독의 리더십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 세대)를 탐색 중인 우리 사회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기성세대와 많이 다른 밀레니얼 세대가 주축이 되면서, 조직마다 소통에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많다. 16일 새벽,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정 감독의 ‘이해’도 함께 곱씹어 보자.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