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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에서 식음료까지 “귀여운 것이 좋아”

입력 | 2019-05-27 03:00:00

[컬처 까talk]‘키덜트 문화’의 진화




서울 용산구 디저트 카페 ‘라라라이크’에서 판매중인 케이크. 이곳 단골손님인 김지민 씨(27)는 SNS를 통해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 등이 그려진 디저트를 직접 주문해 먹기도 한다. 라라라이크 제공

《#1. “병아리 모양 지우개를 살까, 핫도그 모양 자석을 살까.” 직장인 한선주 씨(32)는 요즘 주말마다 ‘소품 가게 도장 깨기’를 하러 다닌다. 서울 마포구 홍익대 거리와 망원동 일대에 포진한 소품 가게를 돌면서 눈에 들어오는 물건들을 하나씩 사 모은다. 그는 “도장 깨기 목록에 오른 소품 가게 15곳을 섭렵한 뒤 두 번째 투어를 하고 있다. 깨알 같은 소품 쇼핑을 하다 보면 현실 감각은 옅어지고 행복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2. 30대 남성 직장인 김모 씨는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이허브’에서 어린이용 비타민을 주문한다. 그가 주로 구입하는 제품은 알록달록한 젤리 종합 비타민과 오렌지 모양 비타민C. “어린 시절 어머니가 약국에서 곰돌이·공룡 모양 비타민을 사주셨다. 비타민 하나에 행복감에 젖어들던 과거로 돌아간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문화를 즐기는 키덜트(kidult). 장난감·소품에서 식음료, 영상, 화장품, 출판으로 외연을 넓혔고, 소비층은 20대 여성뿐만 아니라 30, 40대 여성과 남성까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국내 캐릭터 산업 시장 규모는 12조7000억 원. 롯데백화점의 올해 키덜트 상품군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50% 이상 급증했다.

○ 귀여움에 홀린 ‘어른이’들

서울 성동구 소품 가게 ‘잡화게티’ 매장. 박민이 대표는 “귀여운 것을 좋아해서 2014년 문을 열었다. 1년 전부터 가게를 찾는 남성들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SNS 캡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소품 시장의 성장세다. 서울에서는 홍대 망원동 이태원 성수동 일대에 2, 3년 전부터 소품 가게가 들어서더니 최근에는 30개 이상으로 늘었다. 홍대의 ‘픽시’ ‘미미도넛’과 망원동의 ‘말랑상점’ ‘망원만물’, 성동구 성수동의 ‘잡화게티’ 등이 대표적이다.

세상의 모든 귀여운 개체를 취급하지만 특히 ‘인스’(인쇄소 스티커), ‘떡메’(떡메모지·한 장씩 떼어 쓰는 메모지), 자석, 지우개, 마우스패드 등이 인기가 좋다. 박민이 잡화게티 대표(35)는 “5년 전만 해도 서울 시내 소품 가게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는데 지금은 오프라인 가게만 30여 개에 이른다”고 했다.

음식과의 결합도 활발하다. “이걸 어떻게 먹어?” “30분 동안 감상하자.” 24일 서울 마포구 ‘디저트연구소’를 찾은 10여 명의 손님은 복숭아와 선인장 모양 케이크를 앞에 두고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케이크 한 조각에 9000원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좋다. 강민재 매니저(30)는 “최근 선보인 보노보노와 벌 모양 머랭 쿠키는 판매하자마자 동이 났다”고 했다.

디저트 외에도 ‘뽀로로’ ‘인어공주’ 등을 본뜬 귀여운 밥상, 캐릭터를 내세운 음료수의 인증샷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세를 이룬다. 커피 프랜차이즈도 마시멜로 같은 귀여운 디자인의 음료를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작은 물건을 취급하는 답례품 시장도 귀여운 디자인이 각광받고 있다. 수박 모양 떡설기, 욕조에서 목욕 중인 병아리 모양 방향제, 피카추 디자인의 수세미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외 캐릭터를 내세운 화장품, 출판물, 전시도 잇따르고 있다.

○ ‘남성 편입’ ‘적극 소비’


곰돌이 물고기 같은 귀여운 모양의 어린이용 비타민을 찾아 먹는 성인도 늘고 있다. 아이허브 캡처

귀여운 콘텐츠는 전 세대를 강타하고 있다. 직장인 김현미 씨(46)는 중학생 딸보다 귀여운 인형과 소품을 더 좋아한다. 5년 전부터 하나 둘 사 모은 스노볼, 스티커, 오르골, 봉제인형은 팔아도 될 수준으로 쌓였다. 그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즐기는 기분이 좋다. 만족감이 크다 보니 체면, 쓸모, 경제적 상황, 나이 등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남성들도 귀여운 걸 거부하지 않는다. 귀여운 아기 사진을 수집해 공유한다는 직장인 김규민 씨(32)는 “샘 해밍턴의 아들 윌리엄을 특히 좋아한다. 최근엔 넷플릭스의 애니메이션 ‘리락쿠마와 가오루씨’에 빠져 있다”며 “취향일 뿐인데 친한 친구들조차 ‘남자가 이런 걸 좋아하느냐’고 지적하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귀여움을 소비하는 방식은 적극성을 더해가고 있다. 유튜브에서는 ‘올해 가장 귀여운 동물’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아기’ 등의 순위 영상을 보고 댓글창으로 웃음 참기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취미 모임 사이트에는 소품 가게 동행자를 구하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귀여움이 문화 콘텐츠의 중심으로 돌격하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에 어른은 어른 취향을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이 팽배했다. 최근에는 개성 존중과 소소한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어른다움에 대한 요구가 옅어졌다. 사회·경제적으로 각박한 현실도 1차원적인 위안을 주는 귀여운 콘텐츠의 주가를 높이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newjin@donga.com·이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