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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안영배]한국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

입력 | 2019-05-16 03:00:00


세계유산위원회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한국의 서원에 대해 사실상 등재가 확실시되는 ‘등재 권고’ 통보를 해왔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모두 9곳의 서원이 선정 대상이 됐다. 2016년 세계유산 등재 신청 때 실패했다가 3년 뒤 날아든 희소식이다. 그런데 중국은 배가 아픈 모양이다. 중국 환추시보는 14일 인터넷판에서 “한국이 또다시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이번엔 정말로 중국과 큰 관계가 있다”며 불편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마치 중국 것을 빼앗긴 것 같다는 듯.

▷서원이 중국에서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에선 악록(岳麓)서원 등 4대 서원이 유명했고, 청나라 때는 7000여 곳에 달하는 서원이 번창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중국 서원은 단 한 곳도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지 못했다. 중국 서원은 관료 양성을 위한 ‘고시원’ 기능에 치우쳤고, 시대에 따라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등으로 학풍이 바뀌며 일관성을 유지해오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반면 한국의 서원은 조선 성리학의 예(禮)를 꾸준히 실천하고 존속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 조선 후기 서원이 토호 세력의 이권 수탈의 장이자, 특정 가문을 지키는 사적 용도로 쓰이는 등 병폐도 적지 않았지만 도덕군자를 함양한다는 본래의 기능은 유지돼 온 게 사실이다.

▷한국의 서원은 건축과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사례’라는 점도 부각됐다. 서원 건립에 앞장섰던 퇴계 이황은 “서원은 성균관이나 향교와 달리 산천경개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있어 환경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만큼 교육적 성과가 크다”고 말했다. 한국의 서원들은 대개 이 원칙 아래 건립됐으며, 건물 입지도 특징을 지닌다. 학문 탐구에 비중을 두는 강학 중심의 서원은 핵심적인 명당 혈처(穴處)에 교육을 하는 강당(講堂)을 배치한 반면, 제향(祭享)을 중시하는 서원은 사당(祠堂)을 핵심 길지에 배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원이 자리한 곳의 앞산과 뒷산이 열린 공간으로 확장돼 사람들과 교감한다는 자연관 등이 외국인들의 관심을 끌었다”고 밝혔다.

▷세계유산 지정 경쟁에서 한국에 밀린 중국은 반전의 카드를 쥐고 있다. 바로 풍수학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계획이다. 서원 풍수를 연구해온 한양대 박정해 박사는 “10여 년 전부터 준비해 온 중국의 노력이 현실화할 경우 우리나라 서원을 비롯해 왕릉, 사찰 등 풍수 관련 문화재들이 중국의 아류로 분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영배 논설위원 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