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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홍진, 만국공원서 ‘13도대표자회의’ 주도

입력 | 2019-05-11 03:00:00

[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성격은 강렬하야 애국심이 강하고 기미만세 때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에 헌신….’

동아일보 1946년 9월 10일자에 독립운동가 홍진(1877∼1946·사진)의 별세 소식이 실렸다. 그는 1926년 상하이임시정부 수반인 국무령을 지냈고, 임시정부의 의회 기능을 했던 임시의정원 의장을 세 차례 지냈다.

홍진과 인천이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중국 상하이로 떠나기 직전 추진한 ‘13도대표자회의’ 때문이다. 변호사였던 그는 3·1운동 당시 연락책임자로 활동하면서 한성임시정부 수립안에 관여한다.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재 자유공원)에서 홍진과 기독교 전도사 이규갑, 천도교 지도자 안상덕 등이 참여한 ‘13도대표자회의’는 한성임시정부의 수립을 위해 규합한 최초의 사전 협의였다. 비밀리에 소식을 전달받은 지역 대표와 종교 대표 20여 명이 만국공원에 속속 도착했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엄지손가락에 흰 종이나 흰 헝겊을 두르기로 약속한 터였다.

이날 모인 대표들은 국민대회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만들어 각국에 조선독립의 승인을 요구한다는 것 등을 결정했다. 4월 23일 정오 서울 종로구 서린동 봉춘관에서 13도 대표자가 모여 임시정부를 선포하고 집회와 시위를 연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계획이 사전 누설돼 봉춘관에서의 정부 선포식은 실패했다. 대신 전단으로 한성임시정부의 수립을 선포했고, 참석자들의 주도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양윤모, ‘인천에서의 3·1독립운동과 한성임시정부 수립’)

광복 뒤 귀국해 비상국민회의 의장으로 선출됐지만 이듬해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홍진은 선산이 있던 인천 문학산 기슭에 묻힌다. 장례위원장은 백범 김구였다.

이후 1994년 10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로 묘역이 이장됐다.

인천=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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