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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는 전학용? 일반고 떨어지자 미달 자사고 입학 후 편법 전학

입력 | 2019-05-09 03:00:00

자사고-일반고 동시 선발 후유증




대통령의 자율형사립고 폐지 공약으로 자녀를 자사고에 보내려고 준비시켜 온 학부모들은 혼란스럽다.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기존의 다양한 교육과정과 면학 분위기를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진은 3월 한 사교육 기관에서 실시한 자사고 설명회. 동아일보DB

문재인 대통령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입시 위주의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한편 공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이를 위한 첫 단계로 교육부는 2017년 12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난해부터 자사고와 일반고의 입시를 12월에 동시 실시했다.

이전까지는 8∼11월 학생을 먼저 선발하는 자사고는 ‘전기고’, 12월 이후 학생을 모집하는 일반고는 ‘후기고’라고 불렸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자사고도 ‘후기고’가 되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여러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이런 제도 변경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서울 지역 후기 일반고에서 떨어진 학생들이 미달된 자사고 추가모집에 입학한 후 개학하자마자 자신들이 선호하는 일반고로 대거 전학 간 사실이 드러났다.


○ 미달 자사고 이용한 편법 전학

8일 동아일보 취재 결과 올 1월 서울 A자사고에는 일반고 배정에서 탈락한 학생 10명이 추가모집에 지원했다. 절반이 강남 송파 등 강남3구 학생들이었다. 이들 10명은 A자사고에 모두 합격했다. 하지만 이 중 9명은 3월 4일 입학식 이후 3일 안에 모두 일반고로 전학을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들이 전학 간 일반고는 대부분 강남과 송파 지역의 선호 학교였다.

지난해부터 자사고와 일반고의 학생 선발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미달된 자사고는 일반고 합격자가 결정된 뒤에야 추가모집이 가능해졌다. 이에 서울 지역 자사고는 일반고 배정에서 탈락한 학생 189명(중학교 석차 백분율 98.73% 초과자)과 다른 자사고에 지원했다 떨어졌지만 일반고에 가길 포기한 일부 학생으로만 추가모집을 진행해야 했다.

10명은 이런 점을 악용한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원래 일반고에 떨어진 학력 미달 학생은 특성화고나 학력인정 평생교육 시설, 다른 시도 학생 미달 학교에 가야 한다”며 “하지만 제도의 허점을 찾아내 미달 자사고를 징검다리 삼아 학적을 만들고 선호하는 일반고에 골라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자사고를 발판 삼아 자신들이 원하던 일반고에 가려 한 사실은 학부모들의 자백으로 드러났다. 한 학부모는 자녀의 전학 과정에서 A자사고 측에 “자식이 못나서 이런 방법을 이용했다. 죄송하다”고 털어놨다. 다른 학부모도 “일반고 배정에 떨어지니 교육청에서 이런 방법이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A자사고는 서울시교육청에 이런 문제점을 수차례 호소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학 가는 학생 중 미달된 자사고를 이용한 경우가 포함됐을 수 있다”며 “학생들 학습권이 중요해서 그런 걸 막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자사고를 폐지하려는 서울시교육청이 일부러 손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의 한 자사고 관계자는 “교육청이 학부모들한테 이런 방법이 있다고 귀띔해주는 것 자체가 자사고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했다.


○ 재지정 평가 결과 이후 더 큰 혼란 불가피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고교 입시 정책들이 일관적이지 못해 학생은 물론 부모들도 혼란스럽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올해 자사고는 지난해처럼 일반고와 동일하게 12월에 학생을 선발한다. 교육부는 원래 시행령을 개정할 때 자사고 지원자가 일반고에 중복 지원하는 것을 금지했다. 하지만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올해 자사고 지원자는 후기고 모집 시 1지망에 자사고, 2지망에 일반고를 지원할 수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자사고에 지원했다 떨어져도 일반고에 갈 수 있으므로 학생들이 불리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자사고와 학부모들은 “자사고에 지원했다가 탈락하면 일반고는 2지망으로 지원되는 만큼 1지망으로 일반고를 지원하는 학생보다 선호 학교에 가기 어려워지니 불이익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사고 측도 자사고 지원했다가 떨어질 경우 선호하는 일반고에 가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을 조성해 자사고 지원을 기피하게 하려는 게 정부의 의도라고 하소연했다.

자사고를 둘러싼 현장 혼란은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가 나오는 7월 이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11개 시도 교육청은 6월까지 자사고 24곳에 대한 재지정 평가를 마무리하고 7, 8월 일반고 전환 여부를 확정할 방침이다.

올해 재지정 평가는 5년 전보다 기준점이 10∼20점 높아졌다. 자사고들은 “기준점을 통과할 학교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녀가 중3인 한 학부모는 “자사고에 보내려고 준비시켜 왔는데 일반고로 전환되는 결과가 나오면 선뜻 지원하기 어려울 것 같아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