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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자연과 삶]〈2〉펭귄 부모의 헌신

입력 | 2019-05-06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들에게 5월은 ‘가슴 설레는’ 시간이다. 5개월 정도 헤어져 살던 짝과 만나 ‘신방’을 차리는 때다. 오랜만에 만난 부부는 한참 동안 서로 가슴을 기대며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데, 이런 기쁨은 6월 중순쯤 알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

그런데 알을 낳는 장면이 참 ‘인간적’이다. 산고를 겪는 암컷이 몸부림을 칠 때 옆에 있는 수컷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어쩔 줄 몰라 한다. 힘에 겨운 암컷이 부리로 냅다 수컷을 후려쳐도 참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렇게 알을 낳은 암컷이 원기를 보충하러 바다로 나가면, 이제 알을 돌보는 건 수컷의 몫이다.

단순한 일이 아니다. 4월부터 시작되는 남극의 겨울은 영하 40도는 기본이고 겨울 폭풍이 덮칠 땐 영하 60도까지 내려간다. 수컷은 알이 얼지 않게끔 따뜻한 피가 도는 발등 위에 알을 올린 뒤 부드러운 깃털이 가득한 아랫배로 덮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걸음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구상 최고의 추위도 이 자세로 버텨야 한다. 시속 100km가 넘는 눈보라가 몰아칠 땐 다들 함께 모여 견디지만 한순간도 졸 수 없다. 깜박 조는 순간 알이 굴러 나가면 10여 초 만에 얼어 버린다.

더구나 아무것도 먹을 게 없으니 오로지 기본 체력으로 견뎌야 한다. 그럼에도 새끼가 부화하면 아껴 두었던 비상식량을 게워내 새끼에게 먹인다. 그렇게 8월 초쯤 암컷이 돌아올 때까지 무려 네 달을 꼬박 굶는다. 몸무게(30kg)의 3분의 1이 빠질 정도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다행히 암컷이 돌아오면 3∼4주 간격으로 교대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바다로 ‘출퇴근’하는 어려움을 감내해야 한다. 편도 거리가 보통 100∼150km나 되니 말이다. 바다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는데 왜 이렇게 먼 곳을 선택할까? 얼음이 깨지지 않는 곳이어야 새끼들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새끼 입에 먹이 하나 넣기가 이렇게 힘들다. 이런 따뜻한 사랑이 있기에 가장 추운 곳에서도 새끼가 자란다.

새끼들에게 더 나은 삶을 마련해 주려는 부모의 노력은 드물지 않다. 조피시(jawfish)라는 물고기 수컷은 암컷이 알을 낳으면 부화할 때까지 커다란 입속에 알을 품는다. 자나 깨나 품고 있어야 하니 이 녀석들 역시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대왕문어 암컷은 알을 낳은 후 6개월 동안 역시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 자리에서 알을 지키다 지쳐 생을 마감한다. 중앙아메리카의 딸기독화살개구리는 손톱만 한 크기임에도 독이 최강인데, 새끼를 키우는 정성도 최고다. 알에서 올챙이가 나오면 하나씩 업어 커다란 나무에 있는, 움푹 패어 물이 고인 곳에 옮겨 놓은 다음 50일 동안 먹이고 지킨다. 손톱만 한 녀석에게 이 일은 서울시 전역을 돌아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지극정성을 부모가 되어 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 8일은 어버이날이다. 우리를 키운 부모에게 작게나마 은혜를 갚는 날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