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길종 감독은 영화 ‘바보들의 행진’을 통해 1970년대 현실에 맞닥뜨린 청춘의 절망을 그리며 이면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입영열차 속 병태와 차창에 매달린 영자의 키스 장면은 한국영화사 명장면으로 꼽힌다. 사진제공|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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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영철이…군대로 간 병태
암울했던 현실과의 이별 키스 애틋
암울했던 현실과의 이별 키스 애틋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우리들 가슴 속에 뚜렷이 있다/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자 떠나자/동해바다로/신화처럼 숨을 쉬는/고래 잡으러.’
영철은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는 마침내 눈물을 삼키며 동해의 가파른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영태는 함께 가자는 병태를 말렸다. 병태는 대신 입영열차에 올랐다. 병태는 떠난 줄 알았지만 달려와 애타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열차 창문에 매달리는 영자와 이별의 키스를 나눈다.
하길종 감독의 1975년작 ‘바보들의 행진’의 마지막 장면이다. 한국영화사에 깊은 인상으로 남은 또 하나의 명장면이 되었다. 하 감독은 영철과 병태라는, 당대 두 대학생의 이야기를 통해 청춘의 절망을 그려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했던가. ‘한국적 민주주의’를 내세운 권력은 일련의 ‘긴급조치’로 시민들의 입과 귀를 틀어막았다. 대학도 마찬가지여서 휴교령이 잦았다. 머리카락마저 마음대로 기를 수 없어서 거리에선 장발단속이 끊임없었다. 청춘들은 귀밑머리는 경찰관의 가윗날에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오로지 관리와 단속과 통제만이 권력의 ‘소명’인 채로 “자유방임”의 사고는 터무니없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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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길종 감독은 이 같은 1970년대 청춘을 둘러싼 다양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 대상을 따라가는 핸드헬드 기법과 경쾌한 카메라 워크 등 신선한 방식으로 청춘의 모습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녹록하지 않아서 무려 30분 분량의 필름이 검열에 잘려나가는 수모를 당해야 했다. ‘예쁜 고래’ 한 마리를 꿈꾸며 삽입된 송창식의 노래 ‘고래사냥’도 오랜 시간 들을 수 없는 금지곡이 되었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