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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걱정에… 이혼 도장 대신 ‘바람’ 확인받고 위자료 받아

입력 | 2019-04-20 03:00:00

[위클리 리포트]간통죄 폐지 4년, 달라진 대응
간통죄 폐지 후 불륜 상대방에 위자료 청구소송 급증
“이혼할순 없고…” 벼랑끝 그녀들의 비상구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눈앞에서 확인했지만 이혼할 수는 없어요.”

50대 여성 A 씨는 최근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 이렇게 하소연했다. A 씨는 “20년 넘게 함께 산 남편이 이럴 줄은 몰랐다”면서도 “아이들이 걱정돼 남편과 헤어지진 못하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A 씨는 끝내 남편과 이혼하지 못했다. 그 대신 남편이 바람을 피운 상대(상간자·相姦者)에게 정신적 피해를 배상해달라며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이 상간자가 끝까지 불륜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위자료 3000만 원을 A 씨에게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남편은 “미안하다”면서 가정으로 돌아왔다.

2015년 2월 간통죄가 폐지된 뒤 자신의 배우자가 바람피운 상대를 대상으로 한 위자료 청구 소송이 늘고 있다. 특히 자녀 때문에 이혼을 망설이는 이들이 이 소송에 많이 의지한다. 승소하면 공문서인 판결문으로 불륜 사실을 확인받게 돼 바람피운 배우자에게 죄책감을 더하면서 상간자에게서는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 소송을 진행하다 배우자와 상간자의 사이가 틀어져 부부관계가 회복되는 사례도 있다.

소송을 진행하는 사람끼리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도 생기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소송을 결심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잦다. 소송에서 이겨 가정을 지키려면 확실한 물증을 확보하고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야∼사랑해.”

결혼한 지 20년이 넘은 A 씨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은 장면을 목격했다. A 씨와 남편, 그리고 그 여성 모두 아는 사이였다. 평소 셋이서 자주 어울렸건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느낌이었다.

A 씨는 남편의 최근 신용카드 사용 내용을 조회했다. 그 여성이 사는 지역을 1주일에 한 번꼴로 남편이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 날 출장 간다는 남편을 뒤따라가 봤더니 이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난 A 씨는 소리를 지르면서 남편의 손을 잡고 그곳을 뛰쳐나왔다.

이 여성은 끝까지 불륜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변호사와 상담한 A 씨는 ‘객관적 물증’을 확보했다. 남편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남편과 이 여성이 함께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담겼던 것이다. A 씨는 이 여성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이겼다.

A 씨 소송을 담당했던 박은주 변호사(36·사법연수원 40기)는 “블랙박스 영상을 찾지 못했다면 패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송에서 이기려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증거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혼 기피자들의 ‘벼랑 끝 선택지’

2015년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상간자(相姦者·배우자가 바람피운 상대)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간자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를 달라며 민사상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는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상간자 소송에 대한 공식적 통계는 없지만 판사와 변호사들은 “상간자 소송이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라고 입을 모은다. 상간자 소송으로 이름난 한 변호사는 하루 한 건꼴로 상간자 소송을 수임할 정도다. 상간자 소송을 다수 맡고 있는 다른 변호사는 “정확한 소송 건수는 알 수 없지만 지난해에만 전국에서 상간자 소송이 수천 건 제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간통 피해자들이 상간자 소송을 찾는 건 이혼을 막기 위한 일종의 ‘벼랑 끝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더라도 아이 양육, 경제적 이유 등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이혼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상간자 소송에서 이기면 판결문이라는 ‘공문서’로 배우자의 불륜 사실을 확인받고, 상간자로부터 소정의 위자료를 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공문서’를 갖고 있으면 향후 이혼 소송을 하더라도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에게 위자료를 높게 물게 하거나 재산 분할 과정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상간자 소송을 진행하던 중 배우자가 상간자와 서로 책임을 미루며 싸우다 가정으로 되돌아온 적이 종종 있다고 한다.

○ ‘오피스 커플’부터 ‘초등학교 첫사랑’까지

상간자 소송의 대상이 되는 ‘바람의 유형’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는 ‘직장 동료’끼리 벌어지는 불륜이다. 직장에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른바 ‘오피스 와이프(Office Wife)’ ‘오피스 허즈번드(Office Husband)’가 애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다. 서로의 부부관계에 대해 터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성관계 사실만 확인되면 상간자가 위자료를 물어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는 취미를 즐기는 동호회 등에서 만나 불륜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상간녀 B 씨는 산악회에서 만난 유부남과 바람을 피웠다. 부인에게 불륜 사실이 한 번 들통난 뒤 B 씨는 ‘다시는 전화 연락을 하거나 만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연락하거나 만나면 어떠한 처벌도 달게 받을 것을 맹세한다’는 각서를 썼지만 만남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부인은 B 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 법원은 부인의 손을 들어줬다.

세 번째는 40, 50대가 초·중학교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는 경우다. 이른바 ‘중년의 위기’에 지쳐 있던 이들이 20년 만에 만난 ‘첫사랑’에게 빠지는 식이다. 네이버 모임사이트 ‘밴드’나 카카오톡을 통해 애정 표현이 담긴 메시지를 주고받다 불륜 사실이 걸리는 경우가 잦다. 성관계 없이 애정 표현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소송으로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낮은 편이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인이 불륜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체 상간자 소송에서 남편들이 부인과 바람을 피운 상간남을 상대로 내는 위자료 소송 비율은 20% 정도다.

○ ‘타인의 시선’에 키보드만 두드려

“부끄러워서 어디에 말도 못 해요.”

상간자 소송을 많이 맡고 있는 한 변호사는 최근 한 중년 여성과 상담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이 바람났지만 여성은 ‘버림받은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지인들에게 변호사를 소개해달라는 말조차 못 했다. 이처럼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보고도 상간자 소송을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변호사를 소개받기도 힘들고, 증거를 수집하는 방법도 서투르다.

변호사들은 “상간자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선 배우자가 외도한 ‘확실한 물증’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우자가 상간자와 나눈 카카오톡 메시지나 블랙박스 영상 등이 결정적 증거로 쓰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증거를 확보하기 전에 불륜 사실을 알았다고 티를 내면 배우자가 증거를 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기혼자임을 알고도 연애를 했는지도 증명해야 승소할 수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상간자들이 연애 사실 자체가 걸린 것을 치욕스러워하며 사실을 빠르게 인정했지만, 요즘엔 소송에 대비해 “상대방이 결혼한 줄 모르고 성관계를 맺었다”며 발뺌한다고 한다.

다만 상간자가 상대방의 혼인 여부를 몰랐던 ‘피해자’인 사례도 있다. 연애의 상대방이 유부남, 유부녀인지 몰랐던 것이다. 이 때문에 상간자 소송을 당한 ‘피고’로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분쟁 소지가 있는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회사나 지인에게 알려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겠다’고 말하는 것도 협박죄에 해당할 수 있다.

○ 승소해도 위자료 1000만∼1500만 원에 불과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 사실을 법정에서 증명해도 위자료는 1000만∼1500만 원 남짓이다. 상간녀 C 씨는 필리핀의 한 어학연수원에서 만난 유부남과 함께 호텔에서 밤을 보냈고 ‘자기’,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C 씨는 상간자 소송으로 피소된 뒤 패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엔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었을 뿐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면서 위자료를 1000만 원으로 정했다.

직접적인 성관계나 유사 성행위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는다면 위자료가 더 줄어든다. “안겨서 자고 싶다”, “사랑해” 같은 낮은 강도의 애정 표현 메시지를 나누면 500만 원 내외의 위자료가 정해진다. 변호사 수임료가 300만∼500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론 이득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일각에선 한 가정을 파괴한 것치곤 위자료 액수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엔 판사들이 상간자 소송을 유일한 ‘불륜 해결책’으로 인식하면서 위자료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성관계가 이뤄진 것이 분명하고, 한번 불륜 사실이 들통난 뒤에도 계속 만남을 지속하면 위자료가 다소 높게 책정된다.

한 지방법원에선 올 1월 유부남과 바람을 피운 상간녀 D 씨가 부인에게 2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D 씨는 ‘앞으로 전화, 문자 등 모든 것을 하지 않겠음을 약속한다’고 각서까지 썼지만 계속 불륜을 저질렀다. 재판부는 “혼인 관계가 사실상 파탄이 났고 별거까지 이르렀다”며 D 씨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 ‘혼전계약서’는 법적 효력 없어

상간자 소송이 늘고 있는 것과 반대로 이혼 소송은 오히려 줄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간통죄 폐지 전인 2014년 4만1050건이던 이혼 소송 건수는 2017년 3만5651건으로 떨어졌다. 이혼 전문 최유나 변호사(34·변호사시험 1회)는 “결혼을 하는 이들이 적어지면서 이혼 건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근엔 결혼하기 전에 ‘이혼 시 재산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혼전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특히 부잣집 시부모가 며느리를 상대로 요구하곤 하지만, 이혼 사유가 발생하기 전에 쓴 각서는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바람피운 배우자가 ‘한 번만 더 딴짓하면 전 재산을 주겠다’고 써놓아도 두 번째 불륜이 발생하기 전에 작성된 것이므로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되긴 어렵다.


▼소송 팁 공유서 예상 위자료 계산까지… ‘상간자 소송’ 온라인 커뮤니티 북적▼

일부 로펌, 직접 온라인카페 운영… 소송당한 ‘피고’ 커뮤니티도 등장

최유나 이혼 전문 변호사가 겪은 상담 실화를 바탕으로 한 김현원 작가의 웹툰 ‘메리지레드’. 최 변호사의 인스타그램에 연재되는 이 웹툰의 팔로어는 14만 명에 이른다. 이혼 소송을 망설이는 여성의 사연을 최 변호사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다. 최유나 변호사 제공

“제 얼굴을 바라보던 여섯 살짜리 아들이 문득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엄마 슬퍼하지 마. 내가 지켜줄게’라고.”

‘상간자 소송’을 상담하는 A온라인 카페에 한 여성이 쓴 글이다. 이 여성은 남편과 바람을 피운 상간녀와 위자료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여성은 “남편과 함께 지내며 소송을 한다는 게 오늘따라 너무 힘들다”면서 아들이 자신을 위로한 사연을 자세히 적었다. 글을 본 다른 여성들은 “함께 힘을 내자”는 댓글을 달며 서로를 토닥였다.

상간자 위자료 소송이 늘면서 이를 다루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으나 주변의 시선 때문에 지인들에게는 말을 못 하고, 익명에 기댄 온라인에서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법원에 소송을 걸어야 위자료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소송에서 이기려면 ○○○ 변호사를 찾아가야 한다’는 등 각종 소송 비결이 공유된다. 영향력이 크다 보니 ‘일감’을 찾는 변호사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로 모여든다. 커뮤니티마다 ‘자문 변호사’가 활동하기도 한다.

회원 수가 2만2000명에 이르는 A온라인 카페에는 하루 평균 30여 건의 상담글이 올라온다. 한 여성은 “여태껏 살면서 유부남을 꼬셔본 적도, 바람을 피운 적도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여성은 “상간녀 소송 접수부터 선고까지 얼마나 걸리느냐”며 조언을 구했다.

상간자 소송을 다수 수임하고 있는 한 법무법인은 직접 B온라인 카페를 운영한다. 소속 변호사들이 상간자 소송에서 이길 때 받을 수 있는 ‘예상 위자료’까지 계산해준다. 회원들과 변호사들이 만나는 정기 모임을 개최해 자연스럽게 상담으로 이어지도록 돕는다. 주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아 회원이 4만3000명에 달한다.

유부남, 유부녀와 바람을 피웠다 소송을 당한 ‘피고’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도 있다. 상간자들이 모인 C온라인 카페에선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물어주지 않는 방법, 상대방이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의 능력을 부인하는 팁이 공유된다. 상간자 소송이 늘면서 이 카페 회원 수도 1만8000명이 됐다.

사건 소개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수수료를 지불하고 변호사를 소개 받는 건 변호사법 위반이므로 피하는 게 좋다.

온라인 커뮤니티가 법률 지식에 취약한 이들을 돕기보단 ‘돈벌이’에 악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상간자 소송을 주로 맡는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감정에 휩쓸리면 자칫 소송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변호사에게 수임을 맡기게 되는 부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