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북 협상 원칙은 2·28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전혀 변함이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새벽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입장 변화를 타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에 대해서도 그는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추진에 대해선 “한국이 파악하는 북한 입장을 가능한 한 조속히 알려 달라”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메시지는 분명했다. 문 대통령이 설득해야 할 사람은 자기가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며, 김정은의 태도 변화 없이는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고 못 박은 것이다.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할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새로운 대북 협상 카드는 내놓지 않았다. 스몰딜 가능성을 부인하진 않았지만 “지금은 빅딜을 얘기하고 있다”며 북한의 선(先) 핵포기를 강조했다.
이번 회담 결과 문 대통령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청와대는 회담 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지만 이견이 여전함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사전에 의제 조율을 제대로 한 것이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 북-미 간 ‘중재자’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김정은에게 전하는 ‘메신저’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에 따라 갈수록 대미 강경 자세를 굳혀가는 김정은을 설득해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장 김정은이 남북 회담 제의를 받아들일지조차 미지수다.
문 대통령이 마주할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당장은 남북,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되 한편으론 한반도 정세의 급작스러운 긴장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남북 간 합의마저 무효화되는 사태로 전개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남북 교류·협력사업의 중단은 물론이고 군사적 합의 파기까지 염두에 두고 ‘플랜B’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방미 결과가 일깨워준 교훈은 편의적 낙관(wishful thinking)은 늘 기대를 배신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