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참전 후 수송보국 꿈 키우고 대한항공 일궜지만… 지난해 압수수색만 18번, 병세에도 자리 지켜
1979년 제주 제동목장에서 아버지인 고 조중훈 창업회장과 사진 촬영에 나선 고 조양호 회장 © 뉴스1
2014년 12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머리를 숙였다. 땅콩회항으로 물의를 빚은 큰 딸(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질을 결정한 조 회장 얼굴은 어두웠다. 사건발생 일주일 만이다.
조 전 부사장이 남긴 생채기가 아물기 전에 지난해에는 막내 딸(조현민 전 진에어 전무)의 물벼락 갑질이 터져 나왔다.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논란까지 온 가족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광고 로드중
조 전 전무 사건 때도 공식사과를 내놓은 조 회장 마음이 편하진 않았을 것이다. 모두가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지난해 사법·사정기관 압수수색만 18번 이뤄졌다. 가족을 향한 화살을 몸으로 받은 영향인지 수술 직전 조 회장과 식사를 같이한 경제계 관계자는 “기력이 많이 쇠한 듯 보였다”고 술회했다.
비판과 비난은 다른데 가족의 과오여서 운신할 여지가 없었다. “제 탓입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항공산업 도약을 이뤄낸 경영인이 아닌 아버지의 마음이다.
이같은 마음은 세상을 등지기 전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안팎의 압박과 스트레스에 폐질환이 악화된 조 회장은 지난해 말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건너가 수술을 받았다.
광고 로드중
불법 가사도우미 고용과 탈세 혐의 등 재판을 놓고 본인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가족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마음 때문으로 짐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모펀드 KCGI가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경영권을 위협했고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경영권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아픈 내색 없이 묵묵히 버티고 있었을지 모른다.
한 측근은 조 회장이 수술 후에도 별 다른 티를 내지 않아 오는 6월 열리는 IATA(국제항공운송협회)때 의장직을 맡을 것으로 봤다고 한다. 그만큼 주변에 내색을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 대한항공 정기주총 전까지도 안건을 챙겼고 미주 노선 확대를 위한 델타항공과의 사업협업도 고민했다.
그랬던 조 회장이지만 대한항공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에서 내려오게 되며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수송보국을 꿈꾼 아버지 조중훈 창업회장 뒤를 이어 항공산업에 족적을 남겼지만 모든 성과가 갑질에 가려졌다.
광고 로드중
2001년 파리에어쇼 에어브서관을 참관하고 있는 고 조중훈, 조양호 회장 부자 © 뉴스1
국력을 키우려면 산업·경제가 뒤를 받쳐줘야 하고 조 회장은 아버지 뜻을 이어 수송보국을 택했다. 하지만 안팎의 집중포화는 조 회장을 대한항공에서 밀어냈고 견뎌내던 병세는 악화됐다. 가족을 겨냥한 화살을 받아내고자 마지막까지 병을 감췄으나 끝내 이겨내진 못했다.
조 회장 측근은 “마지막까지 아버지로서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며 “홀연히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내색조차 못했다는 게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