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인사청문회 제도개선 지금이 적기
최고야 기자
#2. 막말, 친북 발언 논란의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달 26일 인사청문회에 섰다. ‘북한의 인권탄압 사례 5개를 대보라’는 질문을 받더니 “정부도 북한 인권문제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저는 북한 연구자다. 통일연구원에서 북한 인권백서를 발간하고 있다”고 버티며 끝내 5가지 사례를 말하지 않았다.
#3. 조동호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지난달 27일 인사청문회에서는 조 전 후보자의 차남 이력서 증명사진이 스크린에 떴다. 한국당 정용기 의원은 “저 수염, 헤어스타일, 티셔츠 차림을 하고도 채용이 됐다. 남들은 정장 입고 넥타이 매고도 떨어진다. 아버지 백 아니냐”고 했다. 조 전 후보자는 “관여한 바가 없다”고 버텼다. 또 야당이 두 아들이 포르셰, 벤츠를 타는 등 ‘황제 유학비’ 출처를 추궁하자 조 전 후보자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올려 받았고, 아내의 퇴직금을 보탰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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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끝에 장관 후보자 7인 중 조 전 후보자와 최정호 전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했지만, 현장에서 인사청문회를 내내 지켜본 기자는 이를 청문회 검증 효과로 보기엔 어렵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알박기’ 부동산 투자 논란을 일으킨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사퇴하면서 정치적으로 부담이 덜한 공무원 출신 둘을 ‘사석(捨石)’으로 버렸다는 일각의 주장은 그래서 일리가 없지 않다. 야당에서는 낙마한 2인을 향해 ‘미끼상품’ ‘제물’에 비유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인사청문회만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개각의 주요 장면들을 돌아보면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돼 왔다. 조각 때 낙마한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당시 비토 여론이 높았던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을 지키기 위한 ‘버리는 카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여야 모두 이런 청문회를 계속 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질 검증보다 신상털기식으로 진행되는 인사청문회의 맹점을 잘 알고 있다. 여야는 지난해 국회 운영위원회 인사청문제도개선소위원회를 설치해 45개에 달하는 국회법 및 인사청문회법 개정안을 두고 나름의 생산적인 논의를 이뤘다. 당시 속기록을 살펴보면 여야는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권 강화 △도덕성 검증(비공개·보안)과 정책능력 검증(공개) 인사청문회 분리 실시 △조세포탈 등 중요 흠결 발견 시 지명 철회 등에 큰 틀의 공감대를 이뤘다.
당시 회의에서 한국당 곽상도 의원은 “개별 신상 자료는 보안을 유지하고 청와대 검증서류도 의원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민주당 김경수 의원은 곽 의원 주장에 동의하며 “도덕성 검증과 업무능력 검증을 분리하자. 윤리성 검증은 비공개로 진행하고, 업무능력 검증을 공개로 진행하면 자료요구권을 확대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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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인사라인의 책임강화 방안도 제시됐다. 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청와대 인사수석 등도 비공개 회의에 와서 자료를 다 내놓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 여야 논의에서 △인사청문 대상 확대 △인사청문 기간 연장 △허위진술 처벌 강화 △인사청문 주관 위원회의 일원화 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 “진보 10년, 보수 10년…지금이 개정 적기”
하지만 국회 운영위 인사청문소위는 20대 국회 하반기 전후로 슬그머니 유야무야됐다. 그나마 여야 의원들이 모두 참석한 회의는 2018년 2월 20일 단 한 차례만 열렸다.
전문가들은 진보, 보수 정권이 번갈아 10년간 집권해 본 지금이 인사청문회 제도의 문제점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기라고 말한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공수가 바뀔 때마다 인사검증 기준이 편의적으로 작동한다”며 “무엇이 관행이고, 무엇이 넘어선 안 되는 선인지 여야가 새롭게 합의해 기준을 마련할 때”라고 강조했다. 여야의 공유된 기준을 만들 때마다 반복되는 정치 공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관 후보자 등도 국무총리나 감사원장처럼 국회의 임명 동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청와대가 후보자들의 문제점을 알고도 임명 강행하는 관행을 제도로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들도, 기자들도 이번 같은 하나 마나 한 청문회를 더 이상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회 운영위원회 ‘인사청문제도개선소위원회’ 에서 나온 아이디어 (2018년 2월 20일)▼
“인사청문회 대상자가 (인사검증 때) 청와대에 내는 서류를 국회에도 내서 국회의원들이 볼 수 있게 하자. 다만 개별 신상 자료는 (의원들이)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
“자료 제출 요구권을 확대·강화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도덕성과 업무능력 검증을 분리해서 인사청문회를 실시하고 윤리성 검증은 비공개로 진행하자.”(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
“인사수석도 (청문회에) 배석을 해서 연대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아무나 추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치적인 공방만 벌어진다.” (한국당 김승희 의원)
“청와대 인사수석이 비공개 회의에 와서 모든 자료를 내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합의된 것까지만 공개해야 한다.” (민주당 강훈식 의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