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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력 믿고 자금지원… 금융-제조업 ‘2인3각’ 시장개척

입력 | 2019-04-01 03:00:00

[아세안 실크로드]아세안의 금융 코리아
<2>제조업 버팀목 된 한국 금융




지난달 19일 베트남 하남성 쩌우선 공단의 '선란전자' 공장에서 현지 직원들이 전자통신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2015년 현지에 진출한 이 회사는 한국계 은행의 지원으로 고비를 넘겼다. 폴리(베트남)=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한국계 은행이 아니었으면 공장 문을 닫을 뻔했습니다.”

지난달 21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40km가량 떨어진 빈즈엉 미푹산업공단에서 만난 황태민 성진포머 베트남 법인장은 6만 m² 규모 공장 터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2016년 이곳에 완공된 2만 m² 공장에선 230여 대의 기계설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성진포머는 자동차의 엔진, 브레이크 등 부품을 제조하는 2차 협력사다. 베트남 진출 2년 만에 양산에 돌입했다. 올해 처음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황 법인장은 “일감이 모여드는데 인력 구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했다.

성진포머는 국내 자동차산업이 부진에 빠져드는 시기 베트남으로 눈길을 돌렸다. 처음부터 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건 아니다. 초기엔 자금난에 빠질 뻔했다. 제품 생산을 시작해 매출을 늘리려면 2년 넘게 걸리는데 당장 기계 구입비만 대당 1억 원이 넘었다. 적자 우려가 큰 외국 회사에 베트남 은행은 대출을 꺼렸다. 이때 KB국민은행은 성진포머의 과거 재무제표보다 특허 20여 건을 비롯한 기술력에 주목했다. 서울 본사에서 심사 인력들이 2, 3차례 출장 나와 기술력을 평가했다. 그 결과 시설·운전자금으로 350만 달러(약 39억8000만 원)를 대출해 주기로 했다.

남돈우 KB국민은행 호찌민지점 부지점장은 “비록 회사가 적자였지만 이곳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발전할 것이란 확신이 섰다”고 회고했다.

○ 금융·보험업의 아세안 투자, 제조업에 이어 2위

국내에서 인건비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제조업체들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국가들에서 한국 금융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금융회사들도 제조업체와 거래를 이어가며 순이익을 늘리고 있다. 과거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중국에 국내 제조업체들이 주로 진출한 것과 달리 아세안에는 국내 제조업과 금융이 함께 진출해 ‘동반 성장’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신남방정책 이후 한국의 대(對)아세안 투자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보험업 투자 규모는 15억4200만 달러로 전년(10억1000만 달러)보다 52.7% 증가했다. 제조업 투자액(25억1400만 달러)에 이어 2위다. 금융·보험업의 투자액 비중도 2017년 19.2%에서 지난해 25.1%로 늘었다.

미얀마에 진출한 의류 제조사 MST언더웨어는 미얀마에 공장을 세운 뒤 현지 은행과 거래하다 지난해 주거래은행을 신한은행 미얀마 법인으로 바꿨다. 현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무조건 현지 담보를 요구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웠다. 반면 한국계 은행은 기업 신용평가를 할 수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다른 나라 소재 자산도 평가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대출이 상대적으로 더 수월하다. 유병문 MST언더웨어 미얀마 법인장은 “한국계 은행이 주거래로 붙어 있으니 대출은 물론이고 각종 금융거래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됐다”며 “개도국 은행과 거래할 때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은행 리스크’가 줄어 안정적으로 사업 자금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은행과 중소기업, 현지 대기업 거래를 뚫다

전자통신 부품업체 선린전자는 2015년 베트남 하남성 쩌우선 공단에 현지 법인을 설립할 때만 해도 국내 협력사들과의 거래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제 이 회사 협력업체 20여 곳 중 절반가량이 베트남 업체다. 지금은 베트남의 첫 완성차 기업인 ‘빈페스트’에 납품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 베트남 대기오염이 심각해지자 빈페스트의 전기오토바이가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 대기업 공급망에 진입하긴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선린전자의 거래은행인 KEB하나은행이 힘을 보태고 있다. 함진식 하나은행 하노이지점장은 “빈페스트의 모기업인 빈그룹이 우리와 거래 중이라 ‘우수한 한국계 협력사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며 “선린전자의 납품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은행이 현지에서 중소기업의 현지화를 돕는 버팀목이 되는 셈이다.

○ 정책금융으로 수출 불모지 개척해야

정책 금융기관들은 민간 은행이 투자하기가 부담스러운 대규모 사업에 자금을 보태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은 열악한 교통 인프라와 발전소 등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힘쓰고 있다. 정부의 신남방정책으로 최근 국내 시중은행 진출이 늘어나자 국내 은행, 기업과 함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민관협력사업(PPP)을 시도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아세안 제조업 중심이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하고 캄보디아 기업금융시장을 뚫고 있다. 우선은 현지 은행에 비해 영업 기반이 밀리다 보니 중소기업 맞춤형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정책 금융기관들이 현지 당국의 규제 때문에 시중은행이 진출하기 힘든 불모지로 더욱 적극 진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영식 KIEP 신남방경제실장은 “제조업과 금융의 동반 진출이 많아지면 은행들이 대출 경쟁으로 리스크 관리에 소홀할 수 있으니 중장기 리스크 관리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노이·호찌민=조은아 achim@donga.com / 자카르타=송충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