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잡는 사무장병원]<하> 현장 단속 한계와 과제
하지만 이 씨의 대응은 법망이 조여 오는 속도보다 빨랐다. 금융 자산은 이미 다른 사람 명의로 돌려놓은 뒤였다. 9월에는 유일한 재산인 부산 해운대의 아파트마저 친척에게 소유권을 넘겼다. 건보공단은 소송을 통해 아파트 매매 수익을 환수할 수 있었지만 이미 근저당이 설정돼 있어 돌려받은 금액은 1억3500만 원에 불과했다. 이 씨가 불법으로 빼돌린 금액의 1%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도 경찰이 조사하고 있는 사건이 많다 보니 바로 수사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잦다”며 “수사가 길어지면 사무장이나 면허를 대여한 의사들이 미리 재산을 빼돌려 환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보험금을 토해내야 할 사무장과 의사의 70%가량은 조사 당시 재산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한다.
○ 국민 혈세 2조3778억 원 증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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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건보공단에 따르면 2012년 환수결정 금액은 701억9400만 원으로 이 가운데 82억4300만 원(11.74%)을 환수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환수결정 금액이 6489억9000만 원으로 약 9배로 늘었지만 돌려받은 돈은 320억2100만 원(4.93%)에 불과했다. 환수율이 6년 만에 절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사무장병원이 지난해까지 빼돌린 총 보험금 2조5490억 원 중 환수한 돈은 1712억 원에 그치고 있다. 국민 혈세 2조3778억 원이 증발한 셈이다.
이처럼 보험금 환수가 부진한 것은 건보공단의 단속 인력 부족과 권한의 한계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사무장병원 단속 전담인력을 2016년 31명에서 올해 87명으로 크게 늘렸다. 하지만 갈수록 지능화되는 사무장병원을 모두 적발하기에는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병원 건물의 소유 여부, 병원 운영 기간 등 78종류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되는 713곳을 추려냈다. 하지만 실제 행정조사를 받은 곳은 211곳에 그쳤다. 인력이 부족해서다. 211곳 중 110곳은 실제 사무장병원, 사무장한의원, 사무장약국으로 확인됐다. 의심되는 기관을 모두 조사했다면 더 많은 사무장병원을 적발할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 ‘특사경’ 도입해 단속 역량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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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사무장병원 단속에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불법행위를 조사하는 행정부 공무원에게 강제조사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현재 건보공단은 수사권이 없어 계좌 확인 등 자금 추적이 불가능하다. 건보공단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사무장병원 수사기간이 평균 11개월에서 3개월로 8개월가량 단축될 것으로 예상한다. 수사가 빨라져 사무장병원의 보험금 부당 청구를 일찍 차단하면 연간 약 1000억 원의 건보 재정 누수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건보공단은 추산한다.
현재 국회에는 건보공단에 특사경 권한을 부여하는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자칫 수사권 남용으로 의료인의 진료권이 위축될 수 있다고 의료계가 반발하면서다. 하지만 현재 논의 중인 특사경 도입 법안은 의료기관 설립 과정만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의료인의 진료권과는 무관하다는 게 건보공단의 주장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희정 연구위원은 “고령화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로 건보 재정 누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특사경 도입뿐 아니라 의료기관 개설 허가 기준을 높이고, 운영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기관을 적극적으로 퇴출시켜 사무장병원이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