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주년]허만정 GS그룹 창업주와 독립운동
허만정 선생
허만정 선생(1897∼1952년)은 오늘의 진주고등학교와 진주여자고등학교를 탄생시킨 선각자로 1897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지신정 허준 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22세 젊은 나이에 3·1 만세운동을 서울에서 경험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되어 부친에게 건의하여 거액을 희사받고 동지 수십 인을 규합해 1920년 진주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제 총독부의 방해와 도청소재지 이전 분규로 남자고등보통학교 설립이 실패하게 되자 다시 여자고등보통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1925년 진주여고의 전신인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개교하게 됐다.
허만정 일신비(왼쪽 사진)와 진주여고.
독립군의 은행, 백산상회에 참여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라는 가게가 문을 열었다. 자본금 13만 원으로 설립된 이 상회는 주식회사 형태로서 이루어졌는데 그 주주들은 영남지방의 대지주들이었다. 백산 안희제를 비롯하여 이유석, 추한식, 경주 최부잣집의 최준 등 총 32명의 주주가 참여하였는데 허만정 선생이 100주를 보탰다.
가게의 이익뿐만 아니라 원금까지도 독립군에게 지원하고 있었으므로 백산상회의 경영은 언제나 적자였다. 백산상회에서 거둔 돈은 남형우와 윤현진을 통해 상하이로 보내졌다. 윤현진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재정차장이었다. 백산상회에서 보내진 돈이 상하이 임시정부의 거의 대부분의 경비를 조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1927년 조선총독부는 백산상회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자금 공급처라는 것을 알아채고 압수에 들어간다. 회사의 장부를 조사하고 임직원을 고문한 끝에 결국 백산상회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문을 닫고 만다.
광복된 조국에서 새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
독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 도쿄를 방문해 도쿄 유학생회에 자금을 기탁하기도 했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한국이 일제로부터 광복되자 그는 새로운 나라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 그중 하나가 국민대회 준비에 동참했던 일이다. 1945년 9월 7일 오세창, 김성수, 윤일선, 서상일, 백관수, 조만식, 장택상, 윤치영 등이 주동이 되어 열린 국민대회가 그것이다. 당시 국민대회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민정 수습 방법, 정당 설립, 국가의 정당 및 정책 등에 대한 범국민적인 토론을 하기 위한 대회였다.
작은 마을에서 한국 경제의 씨앗 싹틔우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을 맞은 한민족은 새로운 희망에 들떠 있었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뜨거운 염원이 역사의 도도한 물줄기 앞에 분출하였다. 격변하는 정치 환경 속에서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어갈 기운찬 용틀임이 한반도의 남쪽 끝,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황무지와 같은 폐허의 땅에서 오로지 땀과 열정으로 기업을 일구고 산업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돌릴 개척자들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반세기 넘게 럭키금성, LG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며 국가경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고, 오늘날 21세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경제의 내일을 열어가고 있는 GS그룹과 LG그룹은 승산마을에 그 뿌리를 두고 첫걸음을 시작했다. 두 가문은 대대로 사돈의 연(緣)을 맺어온 데서 더 나아가 1946년 허만정 선생이 구인회(호 연암) LG그룹 창업주에게 사업자금 투자와 경영 참여를 제의하면서 반세기 넘는 동반자의 관계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비누 한 장의 절약정신 실천
그리고 자식들이 용돈을 헤프게 썼다고 생각되면 왜 그런 데에 돈을 썼느냐고 자식들을 다그쳤다. 자식들은 아버지 앞에서 네 시간이고 다섯 시간이고 금전에 대한 교육을 받은 것이다. 결국 자식들은 마지막에 모두 엉엉 울면서 방을 기어 나왔다고 한다. 자신의 자식들이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근검절약하는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시킨 것이다. 그만큼 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게 했다.
또 훗날 그는 구씨와 허씨 가문의 동업을 위해 사업자금을 댔는데 자금의 출자명세를 꼼꼼히 기록하여 누가 펼쳐보아도 알 수 있게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이런 꼼꼼함과 세심함은 그 아들들에게 자연스럽게 이어져 오늘날 GS그룹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상연 기자 j3013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