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만 매력적인/제러미 베일렌슨 지음·백우진 옮김/352쪽·2만 원·동아시아
온도와 습도, 바람의 살랑거림, 대기가 머금은 향기는 아직 가상현실(VR)이 담아낼 수 없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상현실로 현실과 가깝게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동아일보DB
공상영화 같은 이런 광경은 이미 일부 현실이 됐고,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 삶 깊이 확산될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가상인간상호작용연구소장인 저자는 가상현실(VR)이 가져올 새로운 미래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
가상현실은 실제의 경험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스포츠, 연설, 협상, 기계수리, 춤, 음악 등 많은 분야에서 가상현실 교습으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여행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여행과 똑같지는 않지만 가상현실 여행은 연료 소비를 줄여 지구를 지켜준다.
물론 가상현실을 실제로 믿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가상 캐릭터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대상이 실제인 것처럼 행동했고, 심박수 등의 측정치도 같은 결과를 나타냈다. 대뇌가 실제의 경험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2015년 공개된 가상현실 360도 다큐멘터리 ‘시드라에게 드리운 구름’은 요르단의 시리아인 난민 캠프 속으로 카메라를 가져가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가상현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하는 데도 쓰인다.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에게 가상현실을 통해 충격을 회피하지 않고 다시 대면하게 하면 우울증상이 줄어든다. 드레싱 치료 중 큰 고통을 겪는 화상 환자에게 치료 중 거미공포증 환경을 체험하게 했더니 통증에 대해 생각한 비율이 2%로 줄었다.
가상 세계의 진정한 혁명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가상현실을 통해 ‘실제’ 어디에 있든지 만날 수 있다. ‘지금 여기의 내 모습’일 필요도 없다. 내 모습을 입힌 아바타를 상대방이 보며 대화하면 보내야 하는 정보량이 크게 줄어든다. 카메라를 보고 눈을 맞출 필요도 없다. 물론 아바타는 ‘나’의 실제 표정도 표현하게 된다.
이런 가상현실이 가져올 미래는 장밋빛이기만 할까. “우라늄은 집 안을 따뜻하게 덥히는 데에도 쓰일 수 있지만 도시를 파괴하는 데도 악용될 수 있다. 결국 다른 모든 기술처럼 가상현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단’이다”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좋은’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드는 원칙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만들려는 것이 가상현실에 있을 필요가 있는지 자문해보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