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사업 타당성 따지는 예타… 본질은 세금 쓰는 이유에 답하는 것 목표 기술과 개발과정 측정에만 초점 맞춘 연구개발 예타 방식 기술혁신 이룰 기초연구 하려면, ‘남의 돈으로 빵 사먹을 용기’ 필요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한 번에 통과가 어려워 ‘예타 재수’, ‘예타 삼수’라는 표현이 있다. 예타 심사는커녕 신청 대상이 되기까지도 지난(至難)하고, 설령 예타를 받아도 실패하면 다음 선거 당선을 기약할 수 없어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에게 예타는 ‘통곡의 벽’으로 불린다.
예타는 철도, 항만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뿐 아니라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도 적용된다. 연구개발 사업 예타는 일반 예타가 도입된 지 약 10년 뒤인 2008년에 도입되었다. 당시는 국가 연구개발 예산의 절대적 규모가 급격히 늘어나던 때다. 2000년대 초반 6조 원 수준이던 연구개발 예산은 200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10조 원을 돌파했다. 특히 2006∼2010년 연구개발 예산 연평균 증가율은 10%가 넘었다. 올해 연구개발 예산 규모가 최초로 20조 원에 이르렀지만 지난 3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1% 수준임을 감안하면, 당시 연구개발 예산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질문을 과학기술 분야에 적용하면 크게 두 가지 방향의 답이 있겠다. 먼저, 같이 모은 세금으로 도로를 놓았더니 모두의 편의가 증진되는 것처럼, 유망 기술을 개발해 모두가 풍요로운 미래를 누리게 되면 세금을 그렇게 쓸 만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연구개발 사업 예타는 국민이 맡긴 돈으로 얼마나 미래 먹거리를 잘 만들 것인지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런 사업에 들어가는 돈은 앞으로 빵을 잘 만들라고 주는 것이다.
이제까지 연구개발 사업의 예타는 거의 전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진행됐다는 데 현장 연구자와 예타 수행기관, 부처 담당자들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기존의 연구개발 사업 예타 방식은 따라갈 목표 기술과 그 개발 과정의 시간표가 분명한 사업에 최적화된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국민의 돈을 들여서 해야 되는 일 중에는 돈이 안 되는 일도 있다. 예컨대 국가대표 선수를 키우고, 국립오페라단을 운영하고 질병관리나 검역, 환경평가를 실시하는 등 ‘먹고사니즘’이랑 관련이 없지만 안전하고 품격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같이 모은 세금으로 하는 일이다.
연구개발에는 조만간 먹거리로 이어질 기술 개발만이 아니라 지식과 발견을 추구하는 과학적 연구가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언제 뭐가 나올지 모르는 이런 연구에 세금을 쓰면 그야말로 남의 돈으로 빵 사먹는 것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국가가 세금을 ‘먹고사니즘’에만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국이라고 해서 재정이 마냥 넉넉해서 대규모 과학연구 지원을 하는 건 아니다.
최근 이러한 과학연구의 특성을 감안해 연구개발 예타를 개선할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평가 항목이나 지표 수정 등 구체적 방안도 중요하다. 하지만 솔직하게 예타 제도 혁신의 전제로서 과연 ‘남의 돈으로 빵 사먹을 용기가 있는가’ 묻고 싶다.
김소영 객원논설위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