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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이동우]아픔을 나눴던 의사, 임세원 교수를 기리며

입력 | 2019-02-20 03:00:00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지난 일요일 도봉산 법종사에서 열린 고(故) 임세원 교수의 49재에 다녀왔습니다. 재를 올리는 시간 내내 허무하게 임 교수를 보낸 지난해 마지막 날로부터 49일 동안의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강북삼성병원으로 달려가던 택시 안에서 운명하셨음을 듣고, 막상 도착해서는 응급실 앞에서 유족과 동료 선생님들의 얼굴만 바라볼 뿐 위로의 말조차도 할 수 없었던 시간들.

임 교수는 가슴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고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됐고 매사 성실로 일관하는 성품에 힘입어 교수가 됐으나 해외연수를 앞두고 척추 디스크가 발병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병마를 이겨내고 “선생님은 이 병을 몰라요”라고 하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나도 이 병을 압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환자들을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또 스스로의 투병 과정을 담은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저서도 발간했습니다.

임 교수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은, 자살예방 게이트키퍼 양성을 위한 ‘보고 듣고 말하기’ 프로그램 개발회의 때의 일입니다. 연구진이 다들 흩어진 후에도 임 교수는 홀로 밤늦게까지 고민한 끝에 프로그램의 전반적 프레임을 구상하고 작명까지 끝낸 뒤 새벽에 e메일을 우리에게 보냈지요. 저는 프로그램의 완벽성,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제목, 그리고 메일을 보낸 시간에 놀라며 임 교수를 존경하게 됐습니다.

임 교수의 일생은 그 프로그램의 이름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그분들의 속내를 듣고, 구원이 가득 담긴 말하기로 일관됐습니다. 임 교수의 유족분들께서는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에게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달라. 마음 아픈 분들이 편견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라는 과제를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 동료 정신과 의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습니다만 그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최선의 안을 도출하는 것부터, 이러한 대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하는 일, 실행해 나가는 과정까지…. 그러나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희망의 근거”라는 임 교수의 말을 되새기며 이 길을 가려 합니다.

49재가 끝나가던 시간 한 신부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부활이란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 사람들 안에 심층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임 교수의 인생 역정이 우리 국민에게 알려지고 가슴속에 자리 잡아 타인의 마음을 보고 듣는, 그리하여 ‘벽 쌓기’가 아닌 ‘손 내밀기’를 위한 말하기가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동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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