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 중복장애인 김하선 양이 지난해 11월 17일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점자교과서를 들고 서울 종로구 서울맹학교를 나서고 있다. 김 양이 입학한 연세대는 그가 대학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준비에 한창이다. 김 양은 “이런 배려가 모든 대학에서 일반화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아일보 DB
“‘간장공장공장장’ 빨리 말하기 게임은 하선 학우에겐 어렵지 않을까?”
“그럼 2라운드에 ‘촉감으로 상자 속 물건 맞추기’ 게임을 넣자.”
“오리엔테이션(OT) 상황을 점자로 전달하려면 누군가 타자를 빨리 쳐야 할 텐데, 누가 속기사 역할을 맡을래?”
“18학번 8, 9명이 속기사를 자청했어. 세션별로 돌아가며 맡기면 될 것 같아.”
하선 양은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전국에서 가장 늦은 밤 9시 43분까지 점자 수능 문제지를 풀어 화제가 됐다(본보 지난해 11월 19일자 A2면 참조). 그는 수시전형으로 이 대학 교육학과에 합격했다.
연세대 교육계열 학생 대표를 맡고 있는 3학년 허나연 씨는 “기사를 통해 하선 학우가 우리 과에 들어온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함께 즐길 OT 및 새내기배움터(새터)를 위해 미리 하선 학우를 만나 여러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통상 신입생 OT는 게임과 응원, 학교 프로그램 안내 등으로 구성된다. 비장애학생들은 미처 알지 못하지만 장애학생들로서는 참여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면 행사 진행 내내 ‘외딴 섬’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면 누군가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텍스트로 입력한 뒤 점자화해 알려줘야 한다. 그나마 하선 양은 왼쪽 귀의 청력이 조금 남아있어 누군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주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하선 양은 “OT 때 따로 속기사를 구해 데려갈까 생각했는데 다른 학우들이 거리감을 느낄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며 “그런데 학교 선배들이 미리 연락을 주고 속기까지 해줘 무척 고마웠다”고 말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5년간 서울맹학교만 다닌 하선 양에게 대학생활은 그 자체가 도전이다. 맹학교는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몇 개인지, 복도 어디쯤에 전기스위치가 있는지 모두 꿰고 있다. 모든 시설이 장애를 고려해 갖춰져 있다. 하지만 대학은 전혀 다르다. 특히 연세대는 신입생들이 1학년 때 모두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생활을 한다. 하선 양에겐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맞는 ‘날 것 그대로의 세상’인 셈이다.
연세대 측도 처음 맞는 시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준비에 분주하다. 이삼현 연세대 인권센터 장애학생지원실장은 “장애학생들에게 학습에 필요한 대필, 이동보조, 식사보조 등 인력지원을 하는데, 시청각 장애가 있는 하선 학생에게는 2명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의시간 중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점자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1대당 가격이 600만 원인 점자전달단말기도 필기용과 읽기용으로 2대를 지원한다. 이 실장은 “지난 학기 한 청각장애 학생이 학점을 4.3 만점 받았다”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면 장애학생들의 학업적 성취에 한계가 없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