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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한솔그룹 키워낸 ‘여장부 경영’

입력 | 2019-01-31 03:00:00

삼성가 장녀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별세




이병철 삼성그룹 선대회장(오른쪽)과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1984년 경기 군포시 소재 한 골프클럽에서 함께한 모습. 한솔그룹 제공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녀인 청조(淸照)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숙환으로 30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호(號) 청조는 ‘꿈과 희망 등을 푸르게 비춘다’는 뜻이다.

이 선대회장의 4남 6녀 가운데 첫째인 고인은 삼성에서 독립한 후 제2의 창업을 주도해 국내 제지업계를 선도하는 한솔그룹을 일궈냈다.

1929년 경남 의령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대구여중과 경북여고를 졸업했다. 이화여대 가정학과에 재학 중이던 1948년 조운해 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94)과 결혼했다. 경영 일선에 나선 것은 1979년 호텔신라의 상임이사로 일하면서다.

경영자로서의 자질은 1983년 전주제지 고문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발휘했다. 전주제지는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하며 한솔제지로 이름을 바꿨다. 순 한글을 사명으로 쓴 것은 국내 대기업 가운데 처음이었다. 한솔그룹 관계자는 “사명에는 고인의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반영됐다”며 “아버지의 사업이념이었던 ‘사업보국’을 고인도 늘 강조했다”고 말했다.

여장부라는 평가가 따라다닐 만큼 큰 배포에 섬세함까지 갖춰 이 선대회장이 각별히 아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선대회장은 이 고문에게 “사교의 폭도 넓히고, 경영 공부도 할 겸 골프를 배워보라”고 권했다. 이후 수시로 함께 골프를 하며 이 고문에게 경영에 관한 조언을 했다. 이 고문은 골프와 관련된 노트 수십 권을 직접 쓰며 70세가 넘어서도 골프를 즐겼다. 재계 관계자는 “분석에 분석을 거듭해 판단을 내린 뒤 좌고우면하지 않는 이 고문의 경영 스타일이 골프에도 녹아있었다”고 말했다. 이 고문은 제지 사업을 키우면서 한솔홈데코, 한솔로지스틱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한솔그룹을 국내 주요 그룹으로 성장시킴으로써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보여줬다.

고인은 “최고의 고객처럼 모셔야 할 사람은 직원”이라며 “직원들 식사는 최고급으로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2006년 전북 전주시 한솔케미칼 공장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직원식당일 정도로 직원들의 복지를 챙겼다. 식탁 위에 놓이는 꽃병의 꽃을 직접 준비해 갈아주기도 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컸던 고인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곳은 박수근 백남준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한솔오크밸리의 미술관 ‘뮤지엄 산’(2013년 건립)이다. 2000년엔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국내 최초의 여성전문 장학재단인 두을장학재단을 설립해 17년 동안 500명이 넘는 여성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자녀로는 아들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69), 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66), 동길 한솔그룹 회장(64), 딸 옥형(58), 자형 씨(47) 등 3남 2녀가 있다. 고인은 자녀들에게 ‘어머니’보다는 ‘고문님’으로 불릴 정도로 ‘경영 스승’이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 차려진 빈소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한 재계 인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76)과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59)을 비롯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 등 많은 이들이 빈소를 찾았다. 발인은 2월 1일 오전 7시 30분. 02-3410-3151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