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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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이 계속됩니다. 방송과 신문은 연일 충격적인 소식을 전합니다. 성추행과 성폭력의 피해자, 가해자가 밝혀지고 논쟁과 변명이 이어집니다. 피해자는 참담했던 경험을 고통을 참으며 밝히고 가해자는 자신을 변호하기 급급합니다. 진작 밝혀졌어야 하는 일이 왜 이제야 드러났을까요. 사람들은 뒤에서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으면 더 일찍 이야기했어야지!”
말은 쉽습니다. 현실은 어렵습니다. 피해자는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오로지 해 온 일에서 쫓겨날 두려움, 가족이 알면 받을 충격……. 현실의 이유를 떠나 마음 깊이의 움직임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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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살기 위해서 삽니다. 그때 그 인질들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런 방법을 선택했을 겁니다. 인질범들은 인질들에게 막강한 위협을 가해 몸과 마음을 무력화시켜 종속시킨 후 때로는 친절하게, 다정하게 인질들을 대함으로써 마음의 혼돈 상태를 이끌어냈던 겁니다. 성추행, 성폭행 피해자들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폭행 후에는 모습을 바꿔 사과를 하고 변명을 하고 심지어 사랑으로 포장합니다. 피해자들은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벗어난 후에도 몸과 마음의 상처 회복에 시간을 오래 소모해야 합니다. 불안, 우울, 혼돈, 무기력은 기본이고 기억 왜곡, 현실 판단력 장애,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사건의 전모를 더 일찍, 더 명확하게 밝혔었어야 한다고 누구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공소시효를 전향적으로 손보는 편이 낫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정신분석 용어로 바꾸면 넓은 의미에서 ‘공격자와의 동일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헝가리 제자였던 페렌치가 제시한 개념으로 ‘마음의 상처를 예방, 방어하려는 방어기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가 제시한 공격자와의 동일화의 원래 의미는 공격자와 닮게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겪었던 며느리가 세월이 흘러 자신의 며느리에게 더 혹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경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신입사원 시절 상사에게 엄청나게 당했던 회사원이 위치가 올라가면서 ‘갑질 전문가’가 된다면 어떤 설명이 가능할까요. 상식으로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며느리나 신입 사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공감하고 도와야 할 것 같은데요. 공격자와의 동일화로 설명이 됩니다.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한 자식이 부모가 되면 자식에게 폭력을 쓸 가능성이 큽니다. 동일화란 결국 생존을 위해, 미워하다가 닮아가고 전해진다는 말입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입장과 행위를 닮으려고 애써야 그나마 무너져가는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공격자와의 동일화는 두 측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격자를 닮아 같은 방식으로 공격적이 되는 면, 그것이 원래의 의미입니다. 의미를 넓히면 공격자의 입장에 공감해서 피해 경험 자체를 부정하는 면이 추가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스톡홀름 증후군입니다. 가해자의 마음에 공감하고 돕는 쪽으로 가는 겁니다. 마음은 합리적 이성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학대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학대 사실을 입증하라고 압박한다면 합리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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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돌아가는 형세를 보면 시청자나 구독자에게 정신적인 부담을 주는 데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쟁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적폐 청산의 주체와 대상이 이제 서로 역할을 바꾸는 듯 보입니다. 공격하던 편이 수비에 치중하고 수비에 시달리던 편이 공격하기 바쁩니다. 정치의 세계에서도 미워하다가 결국 닮아가는 현상이 점차 드러납니다. 사람은 다 비슷합니다. “우리는 전혀 다르다”고 서로 강하게 부정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지닌 한계를 알고 국민과 국가를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그저 겸손하게 조금씩 노력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오늘도 공격자와의 동일화는 세상살이 여기저기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멀리서 페렌치가 빙긋 미소 짓는 것 같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학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