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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오성윤]'세월의 탓이라 말하지 말라'

입력 | 2019-01-23 03:00:00



오성윤 잡지 에디터

‘박막례 할머니’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72세 박막례 씨의 온갖 도전기를 다루는 계정으로, 구독자만 60만 명이 넘는데다 연일 국내외 유력 매체에 소개될 정도로 인기다. 이 칼럼에서 다루려는 건 개중에서도 최근 업로드 된 영상인 ‘맥도날드 이용 도전기’. 거창한 계정 설명에 비해 너무 단출한 편을 선정했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호주에서 스노클링도 하고 스위스에서 패러글라이딩도 해본 박막례 씨는 유독 패스트푸드점 방문을 주저했다. 이유인즉 키오스크(주문 자동화기기)라 했다.

“거기 기계는 내가 다 어디로 어디로 눌러야 된다매. 그게 내 맘대로 안 된다고! 자존심 상하자녀.”

박막례 씨의 고함에 내 머릿속에는 뻔뜩, 2개월 전 마카오에서 겪은 일이 스쳤다. 취재차 머물게 된 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객실로 향했는데, 엘리베이터가 도무지 내가 누른 층에 멈추질 않았던 것이다. 카드키 센서에 들어오는 붉은 빛은 인증이 되었다는 신호인지 안 되었다는 신호인지 의미를 알 수가 없었고, 입력 버튼은 전면 터치 패널에 붉은 색 글씨와 붉은 색 백라이트가 쓰여 입력 여부를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결국 나는 동승자들이 누르는 대로 건물을 오르내리다 20여 분 후에야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후에 알게 되기로 해당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객실 번호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호가 따로 지정되어 있던 것인데, 아무튼 중요한 건, 1층으로 돌아와 문이 열릴 때 내가 조금 울고 싶어졌었다는 것이다. 육체적 피로나 촉박한 일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초호화 호텔의 매끈한 엘리베이터에 갇혀 끌려다닌 스스로의 존재가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특정 시스템이 상정한 ‘보편적 수준’의 범주에서 스스로가 벗어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건 참담한 일이다. 평소 타인의 시선에 잘 개의치 않는 박막례 씨가 ‘자존심 상하자녀’ 말했을 때 떠오른 것은, 정확히 그때 그 심정이었다.

상하이, 선전, 마카오 등 중국의 몇몇 도시나 서울은 외국의 여행 리뷰 사이트에서 으레 ‘미래 도시’라는 상투 표현으로 회자되는 곳이다. 기하학적 형태의 고층빌딩과 도시 경관도 한몫 하겠으나 핵심은 도시를 구성하는 크고 작은 시스템이다. 그리고 나는 이런 평가가 ‘보편적 수준’을 극히 높고 좁게 산정한, 냉정한 시스템들로 인한 성취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중이 두루 사용하는 체계를 만들 때는 ‘바보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Idiot Proof)’ 쉬울 것을 염두에 둬야 하지만, 한국에서 살다보면 ‘IT 분야를 담당하는 8년차 잡지 에디터이자 몇 달이 멀다 해외를 오가는 30대에게도 어려운’ 체계를 수없이 맞닥뜨리게 되니까 말이다. 기술 발전의 양상에는 분명 ‘직관적 사용성’과 ‘범용성’이란 갈래도 있다. 그러니 ‘디지털 소외’라는 표현은 너무 수동적으로 들린다. 기술 수준을 떠나, 문제는 우리 사회가 ‘배제’에 너무 익숙하다는 것 아닐까? 이를테면 키오스크의 문제점만 해도 노년층을 고려치 않은 복잡한 UI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휠체어 사용자, 아동을 배제한 높이와 형태도 문제다. 하긴. 우리의 장애인 배제는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거리의 점자블럭을 뜯어내는 수준이니, 고작 키오스크 따위가 문제이겠냐마는 말이다.
 
오성윤 잡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