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족. 한상윤작가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돼지’를 극락세계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조선시대에도 잔칫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돼지에 관한 즐거운 이야기는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돼지꿈을 꿨다면 복권 당첨 같은 대길(大吉)을 바란다. 이처럼 돼지는 풍요와 다산(多産), 행운 등 긍정적 인식이 가득한 동물이다.
행복한 가족. 한상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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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족. 한상윤 작가
● 인간과 돼지의 2000년 동고동락
한반도에서 돼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는 “주호(州胡·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어 철기시대 이후 돼지의 완전한 가축화가 이뤄진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 돼지는 조선 후기까지 사육했지만 이후 외래종이 들어오며 점차 사라졌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사육하는 돼지는 랜드레이스종(덴마크)과 요크셔종(영국) 등 새끼를 많이 낳고 생장속도가 빠른 외국 품종이 대다수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토종 돼지로는 경북 김천시의 지례돈(知禮豚)과 경남 사천시의 사천돈(泗川豚) 등이 있다.
노란꽃이 한가득 행복한 돼지가족. 한상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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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豚)-돈(金) 발음 같아, 복의 상징으로
한상윤 작가
한상윤 작가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물로 여겨진 것은 돼지가 집안의 중요한 자산인 데다 ‘돼지 돈(豚)’과 ‘돈(金)’의 발음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며 “강한 번식력을 가진 돼지가 풍년이나 번창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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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속 기해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1899년도 무탈했다. 인천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국내 최초의 철도 경인선과 서울~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되는 등 근대 문물이 유입됐다. 다만 최초의 민간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이 대한제국에 대한 비판 기사로 창간 4년 만에 폐간됐다. 큰 규모 전쟁은 황금돼지해를 비켜갔다. 1599년은 왜구가 조선을 침략해 1592년부터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6년 동안 전쟁이 끝난 다음해였다.
그렇다고 아주 사건이 없진 않았다. 1839년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 서양인 신부 3명을 비롯해 천주교인 119명이 처형되거나 투옥되는 등 ‘기해박해’로 나라가 뒤숭숭했다. 세도가문이자 천주교에 관용적이었던 안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얻고자 한 풍양 조씨가 일으킨 사건으로 이후 조정의 권력은 풍양 조씨에게 넘어갔다.
1419년은 조선왕조 500년 간 유일하게 타국을 침범해 전쟁을 벌인 해이기도 하다. 왜구의 간헐적 약탈에 시달리던 조선은 삼군도제찰사 이종무로 하여금 227척의 함선과 1만7000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하게 했다. 그는 대마도 앞바다에 함선을 정박하고 2주간 전투를 벌였고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귀환했다.
향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 신라에 나타난 해는 879년 기해년이다. 1899년에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등이 태어났다. 스페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AC 밀란’이 창단된 해이기도 하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