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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68〉슬픔의 신을 넘어

입력 | 2018-12-19 03:00:00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바오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슬픔 덕에 우리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만성적인 살육의 광경, 폭력과 폭행의 정신적 후유증에 매몰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무슨 의미일까.

주인공 끼엔은 제목과 흡사하게 ‘슬픔의 신’이라 불린다. 늘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서 붙은 별명이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슬프다.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는데 자기만 살아남은 것이 슬프고, 전쟁이 할퀴고 간 조국의 처참한 모습이 슬프다. 만신창이가 된 사랑도 슬프다. 그러다 보니 증오나 복수의 감정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유해 발굴단에 참여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천을 떠도는 혼령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혼이 이끄는 대로 그들의 서러운 이야기를 전할 따름이다. 그의 삶은 그렇게 슬픔에 소진되지만, 작가는 그것이 “행복보다 더 고귀하고 고상한 감정”이며 상처를 극복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전쟁 소설에 미움의 감정이 없는 이유다.

그래서일까, 베트남인들은 슬픔을 딛고 전쟁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2018년 스즈키컵에서 우승한 그들은 금성홍기와 태극기를 같이 흔들며 환호했다. 한국인이 감독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랬다. 미국의 우방국들이 파견한 40만 명의 군인 중 32만 명이 한국군이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겠지만 그들에게는 미움이 없었다. 베트남 선수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경기장에서 환호하고, 또 그것을 용인하는 베트남 국민들의 모습은 아름답고 뭉클했다.

아름답기로는 베트남을 응원하는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안에 갇혀 있던 미안함이 그들의 축구 경기를 응원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밖으로 나왔다. 베트남 국민들에게 우승의 영광을 돌리며 “저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 내 조국 대한민국도 사랑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박항서 감독의 역사의식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한 역사의식이 화해와 치유의 디딤돌이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