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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검정 얼굴로 情 나누고… 올해도 300만장 사랑을 쏩니다

입력 | 2018-12-15 03:00:00

[위클리 리포트]여전히 우리 이웃 덥혀 주는 연탄




강추위가 시작된 12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초등학교 학생들이 추운 날씨에도 환하게 웃으며 길게 늘어서 연탄을 옮기고 있다. 연탄 배달은 보기보다 체력 소모가 심해 아이들 이마에 금방 땀방울이 맺혔고 장갑을 낀 손 안쪽에도 땀이 흥건해졌다. 오른쪽 사진은 연탄 배달업체 직원이 손수레에 연탄을 가득 싣고 산동네에 배달하고 있는 모습. 김동주 기자 zoo@donga.com·동아일보DB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겨울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탄’. 새벽에 연탄을 갈기 위해 일어나신 아버지, 눈이 오면 미끄러지지 않게 깨서 뿌리던 다 탄 연탄들, 연탄불에 구워 먹던 쥐포와 오징어…. 하지만 이제는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 그칠 정도로 사용자가 줄고 있다. 그나마 산업용은 없고, 대부분 서민들이 난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네 연탄가게도 거의 사라진 요즘 누가 어떻게 연탄을 쓰고 있을까.



○ 대부분 난방용으로

현재 연탄의 주 사용처는 서민 가구의 난방용과 가게 등의 난로 정도다. 그나마 주거 개선 사업 등으로 도시가스가 보급되면서 소비량도 2014년 162만8000여 t, 2016년 125만5000여 t 등으로 줄고 있다. 전국적으로 13만여 가구가 사용하고 있고, 이 중 4만∼6만 가구는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사랑의 연탄), ‘밥상공동체 연탄은행’ 같은 사회단체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고 있다.

대구에서 연탄 판매업을 하는 한성연탄 최학석 사장은 “예전에 동네에서 흔히 보던 연탄가게는 거의 사라졌고, 주문 배달로 연탄을 받아 사용한다”고 말했다. 최 사장처럼 연탄 제조공장과 연결된 판매업자에게 전화를 해 필요한 수량을 말하면 직접 트럭으로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최 사장은 “집 난방이나 가게 등의 난로에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많이 줄기는 했지만 겨울철에는 하루에 5∼8번 정도 배달을 한다”고 말했다. 수량은 주문자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번에 300∼500장이고, 많게는 1000장도 있다고 한다.

연탄은 대표적인 서민 난방 연료지만 지난달 23일 공장도 가격이 534원에서 639원으로 19.6% 올라 부담이 늘어났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소매가격은 대략 760∼1100원. 이 때문에 ‘사랑의 연탄’도 연탄 1장 후원금을 740원에서 840원으로 올렸다.

최 사장은 “1000장씩 많이 사면 할인해 주고, 반대로 배달 장소가 2층이라거나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은 더 받고 있다”며 “차가 들어가기 힘든 곳은 리어카로 나른다”고 말했다.

‘사랑의 연탄’ 원기준 사무총장은 “우리 단체의 경우 재작년 서울 본부와 전국 지부를 다 합쳐 약 330만 장, 작년 300만 장, 올해도 300만 장 정도를 지원할 것 같다”며 “지원량이 준 것은 기부가 줄기 때문이 아니라 도시를 중심으로 연탄을 때는 집이 줄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천사들의 합창

12일 오후 서울 중랑구 신내동 용마산 기슭의 주택가에서는 얼굴 여기저기에 탄가루를 묻힌 남녀 어린이 20여 명이 열심히 연탄을 나르고 있었다. 이들은 인근 신내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집까지 연탄을 나르는 봉사를 하는 중이다. 시작하기 전 주의사항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다소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금방 익숙해져 서로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며 즐거워했다.

“수염이 생겼어, 하하 호호∼.” “야! 이빨에 바르면 어떻게 해∼ 크크.”

산기슭은 시내와 달리 매섭게 추웠다. 옮겨야 할 연탄은 800장. 한 집당 200장씩 네 집이다. 집마다 차이는 있지만 겨울을 나는 데 방 하나 기준으로 보통 1000∼1500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날 봉사활동을 연결한 ‘사랑의 연탄’의 경우 가구당 300∼400장을 지원하고 있다. 필요량의 3분의 1 정도다. ‘사랑의 연탄’ 측은 “보통 나라에서 ‘연탄 쿠폰’으로 3분의 1 정도, 우리 같은 단체에서 3분의 1 정도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봉사는 담임선생님이 나눔 실천 차원에서 연탄 배달 봉사를 제안하자 학생들이 공감해 이뤄졌다.

연탄 한 장은 약 3.6kg. 보통 두 장씩 들고 나르면 7kg 정도다. 몇 번 정도는 몰라도 아이들이 수십 번을 나르기에는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몇몇은 팔을 주무르고, 몇몇은 뻐근한지 기지개를 켰다. 원 사무총장은 “돈만 기부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기부와 함께 직접 연탄을 배달하는 봉사활동까지 패키지로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탄 봉사’ 어디까지 아니?

연말을 맞아 기업과 단체, 개인들이 연탄 배달 봉사를 많이 하지만 ‘사랑의 연탄’의 경우 자신들이 직접 봉사활동을 언론에 알리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대부분은 해당 기업이나 단체에서 알리는 것이다. 원 사무총장은 “우리로서는 효도하는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것이고, 우리가 조금 더 가진 것을 나누자는 것”이라며 “하지만 봉사활동이 뉴스가 되면서 받는 분들이 ‘달동네’ ‘쪽방촌’ ‘독거노인’ 등 굉장히 불쌍한 사람들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그분들은 경제적으로는 조금 어렵지만 결코 불쌍하고 불행한 분들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연탄 배달 봉사를 하러 온 분들께 절대로 그분들을 아주 불쌍한 사람으로 여기거나 자신이 마치 엄청난 자선활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달 봉사에 회사나 단체 이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일회용 비닐 옷을 입는 것도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다. 이런 비닐 옷은 땀이 배출되지 않아 30분만 지나면 그야말로 땀복이 되고, 정전기 현상으로 탄가루가 더 많이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랑의 연탄에서는 두툼한 천에 겉이 코팅된 큰 앞치마(고깃집 앞치마 모양이다)와 팔에 끼는 토시를 제작해 제공하고, 봉사활동 후 다시 거둬 세탁해 재사용한다. 하지만 홍보가 더 큰 목적인 단체일수록 회사 로고가 없는 이 옷보다는 자신들이 만들어온 비닐 옷을 선호한다고 한다.

봉사를 한 뒤 비닐 옷을 길에 버려서 쓰레기 더미가 되는 것도 문제다. 홍보용 사진 촬영에 더 신경을 쓰는 단체일수록 뒷정리는 소홀히 해 봉사활동이 끝나고 나면 주민들이 쓰레기와 연탄재로 지저분해진 동네를 청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연탄 기부를 받는 주민은 동네에서 소수이기 때문에 다른 주민들이 “그 사람들 때문에 동네가 지저분해진다”며 눈치를 주기도 한다고 한다.

연탄을 나르는 방법은 각자 들고 가는 법과 릴레이식으로 서서 전달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릴레이식은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서서 전달하는 것보다 한 사람씩 엇갈려 마주 보고 전달하는 것이 좋다. 이럴 경우 옆으로 전달이 아니라 비스듬히 앞으로 전달하기 때문에 떨어뜨릴 위험이 작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치인 등 사진 촬영이 우선인 단체일수록 이렇게 하지 않고 모두가 앞을 보고 서서 전달한다. 자기 얼굴이 잘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연탄 배달 봉사는 연탄을 사서 기증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집까지 날라주는 것은 물론이고 골목 청소 등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치는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바쁜 데다 진짜 봉사가 목적이 아니다 보니 사진만 찍고 나면 하나둘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사라진다고 한다. 어떤 의원들은 직접 돈을 모아 연탄을 기부하지 않고, 특정 기업이 한 연탄 기부 현장에 와서 사진만 찍고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원 사무총장은 “연탄 배달 봉사의 핵심은 연탄이 아니라 이웃과의 만남”이라며 “받는 분들은 만나지도 않고, 그분들이 고마워서 타주는 커피 한잔 먹어보지 않고 연탄만 쌓아놓고 혼자 뿌듯해하는 것은 일종의 천사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