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구멍난 국민안전]‘땅속 시한폭탄’ 노후 온수배관
5일 오전 경기 고양시 지하철 3호선 백석역 인근 온수배관 파열 사고 현장에서 한국지역난방공사 관계자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날 오후 8시 41분경 발생한 이 사고로 1명이 숨졌고 23명이 다쳤다. 고양=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91년 만들어진 이 온수배관은 27년 된 노후 열수송관이다. 해당 배관을 통해 온수를 공급해온 한국지역난방공사와 경찰은 배관 부식을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있다. 1990년대 수도권 신도시에 깔린 노후 열수송관이 한계에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열수송관 파손으로 온수 공급이 중단되거나 뜨거운 물이 유출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 전국 열수송관의 32%가 노후…분당은 77%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실이 지역난방공사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역난방공사가 관리하는 전국 열수송관 2164km 가운데 20년이 넘은 노후관은 686km로 전체의 약 32%다. 이들 노후관의 상당수가 일산, 분당 등 1기 신도시와 서울 강남 등지에 깔려 있다. 노후관의 비율은 분당(77%), 강남(54%), 반포·여의도(53%), 고양(50%) 지역이 특히 높다. 평촌과 중동, 산본 등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다른 신도시도 노후관 비율이 높아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후관 파열 사고 역시 이 지역에 집중됐다. 2013년 이후 발생한 11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6건이 분당에서 일어났다. 강남과 고양에서도 2건씩 발생했다. 2013년 4월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21년 된 수송관이 부식으로 파열돼 3158가구 아파트에 24시간 동안 열 공급이 중단됐다. 2016년 3월에는 서울 송파구에서 20년 된 수송관이 파열돼 5540가구에 열 공급이 12시간가량 끊겼다.
○ 부실 보온자재가 부식 촉진
지역난방공사가 방수 성능이 떨어지는 보온자재를 쓰는 등 열수송관 관리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배관을 둘러싼 보온자재는 물의 온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온수의 유출을 차단해 배관의 부식을 막는 기능을 한다. 조원철 연세대 방재안전관리센터장은 “찬물보다 뜨거운 물이 지날 때 배관이 더 쉽게 부식될 수 있어 보온자재 등을 통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 “뜨거운 물기둥 2m 넘게 치솟아”
사고 현장 인근에 차량을 주차했던 김모 씨(49)는 “당시 물기둥이 10초 이상 2m가 넘는 높이로 계속 뿜어져 나왔다”면서 “거리에 수증기가 가득 차 1m 앞도 안 보였다”고 말했다. 인근 아파트 주민 윤모 씨(55)는 “사고 현장에서 50m가량 떨어져 있었는데도 뜨거운 물이 흘러와 발목 높이까지 도로에 찰 정도였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주변 건물로 배달을 가던 음식 배달원 이모 씨(52)는 연기가 자욱해 불이 난 줄 알았다고 했다. 이 씨는 “‘불난 건물에서 왜 배달을 시켰지’ 생각하면서 사거리로 걸어갔다가 뜨거운 물이 발에 닿아 2도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고양=윤다빈 empty@donga.com / 이지훈 / 세종=최혜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