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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회의는 무엇을 개혁하자는 것일까

입력 | 2018-12-01 10:10:00

사법농단 의혹 13명 판사 탄핵 요구 후폭풍 … “가장 나쁜 사법파동” 비판도




대법원 로비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지금 법원은 공정한 재판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내부 투쟁에 휩싸여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103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해놓았다. 이는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는 요청일 것이다. 심판 기준으로는 법관의 ‘양심’을 들었다. 헌법과 법률에는 조문이 있으니 판결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지만, 양심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판사는 신(神)이 아니다. 그들도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시달리고,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있다. 물론 정치적 성향도 갖고 있다. 양심은 소신이나 기분과 혼동될 수 있고, 소신은 정치적 소신이 되기 쉬운 동시에 철학이나 이념과 등치되기도 한다. 소신과 철학으로 심판하면 ‘판사 맘대로’의 편향된 판결이 나올 수 있고, ‘그림자 변론’ 등과 결탁하면 한쪽을 승소로 만들어줄 수도 있다. 

헌법 제106조 1항은 ‘법관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이 법관에게 양심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과 더불어 확실한 신분 보장을 해준 것은 법으로도 보호하지 못하는 진실을 지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그러한 판결을 한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법관의 개인 비리를 보호하는 방패로도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흥미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법관 보호용으로 악용되는 헌법

11월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뉴시스]

2016년 수도권 한 법원에서 근무하는 주사보가 음주운전 혐의로 벌금 900만 원을 선고받고 해임 처분됐다. 뺑소니는 하지 않았다. 그해 인천지방법원 C부장판사가 고속도로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고 뺑소니한 혐의로 검거됐다. 벌금 800만 원이 선고됐으나 잘리지는 않았다. 법원은 그에게 감봉 4개월 징계만 내렸다. 

2015년 한 법원서기는 ‘몰카’ 촬영 혐의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고 해임됐다. 그해 한 판사는 후배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700만 원 벌금이 선고됐으나 법원의 징계는 받지 않았다. 사표를 내고 나갔을 뿐이다. 징계받은 사실이 없으니 그는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었다. 왜 법관은 유사한 죄를 진 법원 직원보다 훨씬 가벼운 징계를 받는 것일까. 

이유는 위의 헌법 제106조 1항에 있다. 두 법관은 벌금형만 선고받았으니 이 조항에 입각해 파면되지 않은 것이다. 국가공무원법은 파면과 해임을 구분해놓았다. 파면은 퇴직급여(공무원연금)가 대폭 삭감되나, 해임은 그렇지 않다. 헌법은 파면만 안 된다고 해놓았으니, 죄가 중한 법관은 해임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그렇지 않다. 이어지는 위 헌법 조항은 법관에 대한 징계처분을 정직과 감봉으로 한정해놓고 ‘기타 불리한 처분을 받지 않는다’고 못 박아놓았다.

전법대엔 의안을 전하는 규정이 없어

11월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는 1표차로 사법농단 의혹 판사에 대한 탄핵을 대법원장에게 요구하기로 의결했다. [뉴시스]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는 뜻에서 마련해놓은 헌법 조항을 과거에는 비리를 저지른 소수의 법관이 방탄용으로 이용했다면, 지금은 판사들이 동료 판사를 치는 ‘칼’로 활용하고 있다. 

3월 대법원은 ‘제왕적 대법원장’ 견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전국법관대표회의(전법대) 규칙을 제정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전법대는 11월 넷째 주 월요일 정기회의를 열어야 한다. 올해는 11월 19일이 그날이었다. 전법대에 참석한 법관 105명은 53(찬성) 대 43(반대) 대 9(기권)라는, 1표차 과반으로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과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한 판사들을 탄핵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국회에 탄핵을 요구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어 13명의 탄핵 대상 판사 이름이 흘러나왔는데, 대법원은 언론이 보도한 이 명단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에서는 여당을 중심으로 탄핵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탄핵은 쉽지 않다. 야당이 있는 국회에서 3분의 2 찬성을 얻고 헌법재판소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13명의 징계가 목표라면 법원은 훨씬 쉬운 길로 갈 수 있다. 검찰에 고발해 수사하게 하고 검찰이 기소하면 법원은 금고형 이상 형을 선고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길 대신 탄핵을 선택했다. 만약 ‘자기 칼로 동료를 베는 것’이 부담스러워 탄핵 카드를 사용했다면, 이는 법관 보호를 위해 만든 탄핵을 악용한 것이 된다. 

전법대는 ‘구성원’으로 명명한 117명의 대표판사로 구성된다. 각급 법원은 내부판사회의별로 대표판사 1명을 보내는데, 300명 넘는 판사가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내부판사회의별로 3명, 150명 이상인 서울고등법원과 수원지방법원은 2명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전법대 규칙에는 이러한 대표판사(구성원)가 내부판사회의의 의견이나 결정을 전달하는 대의원(代議員) 역할을 한다는 규정이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전법대에서 내부판사회의의 의사와 무관하게 자기 뜻대로 투표할 수 있다. 따라서 구성원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전체 법관을 대표한다는 전법대의 의견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전법대가 논의할 수 있는 의안에는 제한이 없다. 대법원장 견제를 목적으로 했으니, 사법정책과 재판제도는 물론이고 인사 원칙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힐 수 있다. 그렇다면 전법대 규칙에는 의안을 정하는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없다. 전법대 규칙은 제9조에 결정한 의안을 구성원에게 미리 통지한다는 내용만 담고 있다. 그러하니 특정 세력이 올린 의안이 전체회의 의안으로 바로 결정될 수가 있다.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70대 농민으로부터 화염병 투척을 받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차량. [뉴스1]

이번 탄핵안은 전법대가 열리기 엿새 전인 11월 13일 안동지원의 판사 6명이 “법관회의에서 판사 탄핵 촉구를 안건으로 논의해달라”고 한 제안에서 비롯됐다. 안동지원은 대구지방법원 산하에 있다. 대구지법은 안동을 포함한 8개 지원, 5개 시군법원을 거느린다. 그런데 대구지법은 물론이고, 대구지법 산하의 여타 지원 등에서 안동지원이 내놓은 의안을 검토했거나 동의했다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아래로부터 의견이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의안을 정하는 원칙과 절차가 없다면 꼬리가 개를 흔드는 ‘왜그 더 독(Wag the dog)’ 현상을 만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전법대는 바로 내부 비판을 받았다. 11월 23일 김태규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는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 등을 거론하며 법원 내부전산망(코트넷)에 ‘전국법관대표회의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강경한 제목의 글을 올렸다. 

사법농단 의혹 판사들에 대한 탄핵을 의결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탄핵해야 한다는 글을 올린 김태규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김 부장은 이 글에서 ‘(전법대는) 아직 수사도 끝나지 않았고, 재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을 제대로 된 증거 한 번 살펴보지 않고 겨우 두세 시간의 회의 끝에 유죄로 평결했다’ ‘법관이 법관에 대한 탄핵을 의결한 날은 정의의 여신이 들고 있는 긴 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버린 날이다’ ‘(전법대 정기회의는)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나쁜 사법파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글을 페이스북에도 올렸다. 

이 때문에 세간의 관심은 전법대의 주축이 누구인지로 쏠렸다. 법원에 사조직이 있다면 이는 법조 3륜 비리보다 더 큰 비리를 만들 수 있기에 법원은 철저히 막고 있다. 그러나 등록한 학회 모임은 허용한다. 가장 유명한 학회가 1988년 6·29 선언 이후 2차 사법 파동으로 만들어졌던 진보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였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시환 전 대법관 등 우리법연구회 출신은 노무현 정부에서 중용됐다. 우리법연구회는 2010년 해체됐고, 2011년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만들어졌다. 국제인권법연구회 멤버 가운데 5% 정도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그래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우리법연구회 후신으로 보는 시각이 나왔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해체하라”

한 판사는 “국제인권법연구회 안에는 소모임이 있는데, 이 소모임이 연구회를 주도해왔고, 전법대도 주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은 “3000여 명의 법관을 대표한다는 전법대 집행부는 의장과 부의장 등 13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과반수인 7명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라고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해산을 요구했다.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법대를 움직이는 소수 세력이 있다면, 이는 전법대가 사법농단 판사를 탄핵하라고 요구한 것과 별도로 사법파동이 된다. 그러나 이 파동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는 무관한 내부 투쟁일 뿐이다. 법관들이 국민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개혁은 하지 않고 헌법이 보장해준 권리를 이용해 권력투쟁을 한다면, 법원은 국민에 의해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비이락인지, 11월 27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 승용차가 법원 판결에 불만을 품은 70대 농민으로부터 화염병 투척을 받았다. 단순 테러지만, 법원이 공정한 재판을 위한 개혁에 주력했다면 이러한 도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6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