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 그룹회장직 사퇴 전격선언
28일 오전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퇴임 선언을 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임직원들과 악수를 나누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코오롱그룹 제공
이 회장은 “지금부터 제 말씀을 듣게 되면 제가 왜 이렇게 입고 왔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라며 손수 적어온 A4용지 5장 분량의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저는 2019년 1월 1일자로 코오롱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대표이사 및 이사직도 그만두겠습니다. 앞으로 코오롱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회장님으로 불리는 것은 올해가 마지막이네요.”
이 회장은 “마흔에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딱 20년만 코오롱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다짐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3년이 더 흘렀다. 시불가실(時不可失·한 번 지난 때는 다시 오지 않으니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의미). 지금 아니면 새로운 도전의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아 떠난다”며 사퇴 배경을 밝혔다.
이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 그동안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며 “청년 이웅열로 돌아가 새로 창업의 길을 가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누구나 한 번쯤은 넘어질 수 있어. 이제와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라는 가수 윤태규 씨의 ‘마이 웨이’ 가사를 읽어 내려갈 땐 눈물을 닦아 내기도 했다.
이 회장의 퇴임 결심은 발표 때까지 극소수 임원만 알 정도로 비밀에 부쳐졌다. 일부 그룹 계열사 사장들도 이날 발표를 통해 사퇴 소식을 접했다. 이 회장은 사퇴 의사를 일부 임원에게만 밝히면서 “아버지가 웅열이가 마흔 살이 되면 회장 자리를 물려주겠다고 주변에 말씀하실 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결국 행동에 옮기셨다. 이제라도 20년만 그룹을 이끈다던 다짐을 지키겠다”며 눈시울을 붉힌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이 회장의 조부인 고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는 1957년 회사 설립 후 20년 뒤인 1977년 고 이동찬 명예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이 명예회장도 73세이던 1995년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회장직에 오른 지 19년 만에 장남 이 회장에게 경영권을 승계한다고 밝혔다. 당시 정정했지만 “21세기를 앞둔 시점에 새로운 세대가 경영해야 한다”는 이유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회장님이 연말 인사 명단을 보더니 ‘내가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모르겠다. 이건 내가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평소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던 회장님이 역으로 퇴임을 표명해 조직 변화를 꾀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 회장이 이 전무에게 그룹 경영권을 바로 물려주는 대신 그룹의 핵심 사업부문을 총괄 운영하고 협의체에 참여하도록 해 경영 수업을 받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공석이 된 ㈜코오롱 대표이사 사장 자리엔 ㈜코오롱 유석진 대표이사 부사장이 내정됐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