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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勞 정책기조 고집땐… 대화기구 아닌 ‘갈등기구’ 될 우려

입력 | 2018-11-23 03:00:00

[경사노위 공식 출범]최저임금 등 勞측 요구 들어줘도
민노총 19년째 대화 참여 거부… 경영계 요청은 거의 수용안해
전문가 “한쪽만 양보땐 순항못해”, 탄력근로 합의가 성패 분수령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22일 청와대 인왕실에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한 뒤 함께 회의 장소인 충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김병철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문 대통령,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청와대사진기자단

22일 공식 출범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한국형 사회적 대화기구’를 표방한다. 기존 노사정위원회를 확대해 청년, 비정규직, 중소기업, 소상공인 대표까지 참여시켰다. 여기서 노동, 복지 전반에 걸친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경사노위는 태생 자체가 노동계 요구로 출범한 기구여서 경영계의 양보만을 요구할 경우 오히려 ‘사회적 갈등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사정위를 개편해 경사노위를 만든 이유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다. 1998년 1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설립한 노사정위는 같은 해 2월 정리해고 법제화에 합의하며 사회적 대타협을 이뤄내 주목받았다. 하지만 민노총은 내부 강경파의 반발에 밀려 곧바로 합의를 파기한 데 이어 이듬해 2월 아예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이후 모든 정부가 민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를 설득했지만 민노총은 19년 동안 “정부가 주도하는 대화기구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노사정위를 개편하겠다고 약속했고, “정부 개입을 줄이라”는 민노총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기구 명칭에서 ‘노사정’ 대신 ‘노동’만을 넣은 것도, 경사노위 안에 국민연금 개혁특위와 각종 업종별 위원회를 신설한 것도 모두 민노총의 요구를 수용한 결과다.

하지만 ‘민노총에 의한, 민노총을 위한’ 기구를 새로 만들고도 민노총만 참여하지 않는 역설적 상황에서 경사노위가 출범했다. 민노총은 내년 1월 참여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지만 내부 강경파의 반발이 여전한 상황이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날 “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는 시대적 의무”라며 “본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의제별, 업종별 위원회와 특위에는 꼭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일단 출범했지만 의미 있는 대타협을 이뤄낼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정부의 노조 편향적 정책기조 속에 경영계의 양보만을 요구하면 오히려 갈등만 커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계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경사노위는 20일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화를 가능하게 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권고안까지 발표했다. 반면 경영계의 요구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최저임금 산정 시 포함되는 임금 항목)를 넓힌 것 외에 받아들여진 게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탄력근로제 확대를 두고 어떤 합의를 이뤄내느냐가 경사노위 연착륙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영계는 주 52시간제 계도기간이 올해 끝나는 만큼 하루빨리 탄력근로제가 확대되길 바라고 있다. 이에 경사노위는 22일 곧바로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할 ‘노동시간 제도개선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에 민노총이 참여할지도 관심을 모은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는 “경제는 배다. 한쪽이 과속해서 배가 기울어지면 안전하지 않다”며 “사회적 대화란 도구를 통해 한쪽(노동)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진지를 구축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유성열 ryu@donga.com·박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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