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신성일의 청춘은 영화 ‘맨발의 청춘’(1964년)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잘생긴 배우들이 주로 맡았던 귀공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허리선 위로 올라오는 짧은 가죽점퍼와 딱 붙은 청바지 패션으로 젊은 청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툭툭 뱉는 듯한 거친 말투와 저항적인 스트리트 패션이 어울려 반항아의 매력을 뿜어냈습니다. 여성을 넘어 남성들까지 그 패션을 따라했습니다. 구제시장이나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취급하는 남대문시장으로 청바지를 구하려는 청춘이 몰려들었습니다. 멀쩡한 옷을 푸른 물감으로 염색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으니, 신성일의 패션은 곧 청춘의 상징이었습니다.
또 다른 전기가 된 작품은 영화 ‘만추’(1966년)였습니다. 사고로 남편을 죽인 여성 모범수가 특별휴가를 마치고 가는 열차 안에서 위폐범으로 쫓기는 젊은 남성을 만나면서 나누는 짧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양 젊은이들의 멜로 스토리 고전이라면 ‘만추’는 성숙한 어른들의 한국 멜로 스토리라고 할 수 있죠. 휘날리는 트렌치코트 자락은 가을남자의 패션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1982년엔 김혜자, 정동환 주연으로, 2011년에는 배우 탕웨이, 현빈 주연으로 리메이크되어서도 남자 배우들의 패션에서 트렌치코트를 빼놓을 수 없었죠.
신성일은 화려한 외모와는 달리 건달, 고학생, 위폐범 등 사회를 등진 역할을 맡았을 때, 턱시도보다는 영화 속 배역의 패션을 보여줬을 때가 더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배우인가 봅니다. 맨발로 배우의 길에 뛰어들어 빛나는 별이 되었고 결국 별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우 말입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