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건팀장
그해 집에는 벽과 바닥에 피를 닦아낸 얼룩이 많았다. 엄마가 동거남에게 맞아 흘린 피였다. 동거남은 일본식 장검을 자주 뽑아 들었다. 경민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면 엄마는 “우리 둘 다 죽는다”며 말렸다. 견디다 못한 엄마는 경민을 데리고 달동네 단칸방으로 도망쳤다. 화장실이 없는 굽이굽이 숨겨진 방이었다. 동거남은 모자(母子)를 수소문했고 결국 장검을 든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며칠 뒤 엄마는 “잠깐 나갔다 온다”며 방을 나섰다. 이불 위에 지갑까지 두고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민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며 동거남을 조사해 달라고 애원했다. “빨리 안 잡으면 우리 엄마 죽어요”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실종자 명단을 내밀었다. “밀려 있는 게 많다. 차례를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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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뒤인 2010년 9월 경민이 해군 부사관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있을 때였다. 군함의 헌병 간부가 물었다. “부대에 너랑 동명이인 있나?” 경민은 직감했다. 입대하며 유전자(DNA) 확인 용도로 머리카락을 냈던 게 떠올랐다. 엄마는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됐다. 동거녀 살인죄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남자가 여죄를 털어놨는데 피해자 중 한 명이 엄마였다. ‘7년 전 잡아달라고 했던 그놈이 맞느냐’고 묻자 경찰은 고개를 떨궜다. 그때 잡았다면 추가 희생도 없었다.
경민은 2015년 법정에서 그를 다시 봤다. 엄마 실종 12년 만이었다.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거인 같았던 그는 왜소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저런 놈한테서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니.’ 형벌은 무기징역으로 무거워졌지만 경민의 자책감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얼마 뒤 경민은 등을 뒤덮는 문신을 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겠다’고 새겼다. 엄마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시신이 나오지 않아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살인. 이 암수살인(暗數殺人)의 피해자는 ‘4중고’를 겪는다. 가족이 사라진 슬픔, 무관심에 대한 분노, 또 당할 수 있다는 공포, 희망도 절망도 할 수 없는 암흑.
경민은 엄마의 피살이 입증된 뒤에도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범죄 피해자가 국가의 구조금을 받으려면 범죄일로부터 10년 내에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범인을 법정에 세웠을 땐 이미 12년이 지난 뒤였다. 엄마가 동거남에게 수없이 폭행당했을 때, 그 손에 살해되고도 생사를 몰랐을 때, 그리고 범인이 잡힌 뒤에도 그는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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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말문이 트인 딸은 그의 문신을 만지작거리며 “아빠, 왜 등에 낙서를 했어”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크면 ‘너에게 엄마가 있듯 아빠도 소중한 엄마가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그의 딸은 아빠가 오래도록 외롭게, 참담한 물음표와 싸웠던 것을 특히 아파할 것 같다.
신광영 사건팀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