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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신광영]‘암수살인’에 사라진 엄마… 아들은 등에 문신을 했다

입력 | 2018-11-02 03:00:00


신광영 사건팀장

영화 ‘암수살인’에는 살인자에게 엄마를 잃은 고교생이 나온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며 영화 속 고교생 역시 실존한다. 올해 나이 서른둘, 이경민(가명) 씨다. 그가 2003년 마지막으로 봤던 엄마는 당시 서른여덟이었다.

그해 집에는 벽과 바닥에 피를 닦아낸 얼룩이 많았다. 엄마가 동거남에게 맞아 흘린 피였다. 동거남은 일본식 장검을 자주 뽑아 들었다. 경민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면 엄마는 “우리 둘 다 죽는다”며 말렸다. 견디다 못한 엄마는 경민을 데리고 달동네 단칸방으로 도망쳤다. 화장실이 없는 굽이굽이 숨겨진 방이었다. 동거남은 모자(母子)를 수소문했고 결국 장검을 든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며칠 뒤 엄마는 “잠깐 나갔다 온다”며 방을 나섰다. 이불 위에 지갑까지 두고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민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며 동거남을 조사해 달라고 애원했다. “빨리 안 잡으면 우리 엄마 죽어요”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실종자 명단을 내밀었다. “밀려 있는 게 많다. 차례를 기다려라.”

1년 넘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경민은 단칸방에 머물 수 없었다. 동거남이 완전 범죄를 시도한다면 다음은 나였다. 경민은 PC방 밤샘 알바를 했다. PC방에 있어야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귀가해 5분 만에 옷을 갈아입고 등교했다. 그 5분간 방문이 열릴 것 같아 눈을 떼지 못했다. 나마저 당하면 누구도 엄마를 찾지 않을 것 같았다.

7년 뒤인 2010년 9월 경민이 해군 부사관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있을 때였다. 군함의 헌병 간부가 물었다. “부대에 너랑 동명이인 있나?” 경민은 직감했다. 입대하며 유전자(DNA) 확인 용도로 머리카락을 냈던 게 떠올랐다. 엄마는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됐다. 동거녀 살인죄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남자가 여죄를 털어놨는데 피해자 중 한 명이 엄마였다. ‘7년 전 잡아달라고 했던 그놈이 맞느냐’고 묻자 경찰은 고개를 떨궜다. 그때 잡았다면 추가 희생도 없었다.

경민은 2015년 법정에서 그를 다시 봤다. 엄마 실종 12년 만이었다.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거인 같았던 그는 왜소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저런 놈한테서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니.’ 형벌은 무기징역으로 무거워졌지만 경민의 자책감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얼마 뒤 경민은 등을 뒤덮는 문신을 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겠다’고 새겼다. 엄마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시신이 나오지 않아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살인. 이 암수살인(暗數殺人)의 피해자는 ‘4중고’를 겪는다. 가족이 사라진 슬픔, 무관심에 대한 분노, 또 당할 수 있다는 공포, 희망도 절망도 할 수 없는 암흑.

경민은 엄마의 피살이 입증된 뒤에도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범죄 피해자가 국가의 구조금을 받으려면 범죄일로부터 10년 내에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범인을 법정에 세웠을 땐 이미 12년이 지난 뒤였다. 엄마가 동거남에게 수없이 폭행당했을 때, 그 손에 살해되고도 생사를 몰랐을 때, 그리고 범인이 잡힌 뒤에도 그는 혼자였다.

며칠 전 경남 창원시에서 만난 경민은 훤칠한 외모에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을 둔 직장인이다. “그땐 경찰이 야속했지만 저도 사회생활 해보니 이해가 됩니다. 여력이 없었을 거예요.” 사회를 탓하며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고군분투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제 말문이 트인 딸은 그의 문신을 만지작거리며 “아빠, 왜 등에 낙서를 했어”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크면 ‘너에게 엄마가 있듯 아빠도 소중한 엄마가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그의 딸은 아빠가 오래도록 외롭게, 참담한 물음표와 싸웠던 것을 특히 아파할 것 같다.
 
신광영 사건팀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