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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63〉‘말’이 아니라 화난 ‘감정’을 보라

입력 | 2018-10-31 03:00:00

욕하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책상에 문제집을 던지면서 “에이 씨∼” 한다. 엄마는 긴 잔소리 끝이라 이미 감정이 격앙된 상태였다. 아이가 욕하는 소리까지 들으니 화가 치밀었다. “너 지금 욕했어? 키워놨더니 부모한테 욕이나 하고 이런 후레자식 같으니….” 엄마는 아까 아이가 잘못했던 일보다 아이가 자신에게 욕을 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말할 수 없는 배신감과 실망감이 온몸을 감쌌다.

“욕해도 되나요?”라고 물으면 원래 답은 “안 된다”이다. 어른이건 아이건 욕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그런데 요새 아이들은 욕을 참 많이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도 있다. 이 아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지도해야 할까?

우선 ‘욕을 왜 할까?’부터 생각해보자. 욕은 부정적인 감정을 묶어서 아주 짧고 빠른 말에 충동적으로 해결하는 표현 방법이다. 욕을 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는 ‘화’나 ‘분노’이다. 정리하자면 화가 났기 때문에 욕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욕만 하지 말라고 하면, 화난 감정은 해결이 안 된다. 화가 나면 물건을 던지는 아이가 있다. 욕을 하는 아이도 이것과 다르지 않다. 물건을 던지는 문제 행동을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아이의 ‘화’에 대해서 다뤄야 한다. 욕을 안 하게 하려면 아이의 화난 감정부터 다뤄야 한다.

욕은 감정이다. 말로 봐서는 안 된다. 감정에 대해서 먼저 얘기하고 나중에 아이의 마음이 풀렸을 때 말이나 행위에 대해서 얘기해 줘야 한다. 욕을 말로 보고 훈계하면 아이들은 대번에 “다른 아이들은 더해요. 나보다 더 심한 욕도 해요” 한다. 이렇게 시작되면 대화가 진행이 안 된다. 본론은 얘기도 못 하고 말싸움만 하게 된다. 하지만 ‘화난 감정’에 대해서 얘기하면 아이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는다. 감정은 내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욕할 때는 무척 화나고 열 받는다는 것인데, 왜 열 받았는지 얘기 좀 해 봐”라고 말을 건다. 아이가 “아니 담임이 이래저래 가지고…” 욕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해도 일단은 다 듣는다. 그리고 “그래, 네 담임이 너희한테 상황도 안 알아보고 화를 내서 네가 억울하다는 얘기지?”라고 정리해준다.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러면 다음에는 그렇게 표현해 봐” 하고 가볍게 넘어간다. “상황이 화는 났겠네”라고 화난 감정에 대해서 수긍해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이가 욕을 할 때는 욕이라는 표현 방식 자체를 지적하기보다 아이가 화가 나 있다는 감정을 인정해주고, 왜 화가 났는지에 대해서 다뤄야 한다. 표현 방식만 지적하다 끝나면 아이가 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지 아이의 마음을 알 길이 없다.

형제끼리 싸우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욕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 조용히 불러서 차분하게 얘기한다. “화난 감정은 표현은 해야 돼. 그러지 않으면 사람은 병이 날 수도 있어. 그런데 너희 나이에 많이 쓰기는 하지만 화난 표현을 매번 욕으로 하는 것은 곤란해. 몸에 배어 버리면 고치기가 쉽지 않아. 사람들은 모두 말로 기분이 나쁘고 말 때문에 싸우거든. 좀 순화해서 표현해 보자. 이건 오랜 연습이 필요해. 연습을 안 하면 잘 못 배운단다”라고 말하고는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욕으로 표현한 감정을 말로 번역해 오라고 한다. ‘형이 자꾸 그러니까 내가 엄청나게 열 받고, 동생인 것이 억울하다’ 이런 식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아이들의 감정이 가라앉은 다음에 해야 한다. 감정이 격해 있을 때는 어떤 조언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딱히 화난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데,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은 어떻게 할까? 욕은 아이들 발달상에 일정 시기, 일정 기간에 나타나는 아이들의 문화이다. “아, 추워죽겠네”라고 말하고도 뒤에 ‘씨발’을 붙인다. 이때 ‘씨발’은 화난 감정이 아니다. 그냥 언어유희이고 습관이다. 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 혼낼 일도 아니다. 조금 거리를 띄우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에, 너무 심하다. 좀 순화해서 써라”라든가 그냥 부드럽게 “말 좀 곱게 써” 정도만 해 주어야 한다. 부모가 과민하면 아이는 이 부분을 오히려 중요한 문제로 인식한다. 자신의 성장 발달에서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부모와 욕에 대한 싸움을 놓아 버린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아이의 문제를 다뤄 주지 못한다. 아이들의 욕은 발달상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이가 드러내 놓고 면전에서 하지 않는 이상, 너무 완벽하게 통제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