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커플에도 ‘시빌 파트너십’ 허용 “결혼은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 남성 중심 결혼문화에 반감 커져
영국 요크주에 사는 박물관 연구원 캐서린 오클리(32·여)는 2일 정부가 그동안 동성(同性) 커플에게만 허용되던 ‘시빌 파트너십(시민 협약제)’을 이성(異性) 커플에게도 허락하기로 했다는 뉴스를 보고 동거남 샘(31)에게 이런 ‘청혼’을 했다. 둘은 이미 7년 동안 함께 살고 있다. 결혼에 소극적이던 샘은 시빌 파트너십 청혼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버밍엄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이제는 동성 커플뿐 아니라 이성 커플도 ‘결혼이냐 시빌 파트너십이냐’를 선택할 수 있다”며 “이는 평등을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라고 밝혔다. 영국 언론 더선지는 “영국사회에서 최근 200년 사이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했다.
영국은 동성 결혼이 인정되지 않던 2004년 동성 커플의 인권 신장을 위해 시빌 파트너십을 도입했다. 2013년 동성 결혼까지 허용되면서 동성 커플은 ‘법적 결합’의 방법으로, 결혼과 시빌 파트너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그러자 이성 커플들은 “우리에게도 시빌 파트너십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시빌 파트너십 도입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에 14만 명이 서명했다.
메이 총리의 이번 결정은 6월 영국 대법원 판결의 후속 조치다. 대법원은 “동성 커플에게만 시빌 파트너십을 인정하는 것은 차별에 해당한다”며 리베카 스타인펠드(37)와 찰스 케이든(41) 커플이 제기한 소송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0년 만나 아이 둘을 낳은 이 커플은 “결혼이라는 오래된 제도는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했고 여성의 선택권을 제한했다”며 “우리는 아이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키우기를 원한다. 더 현대적이고 균형 잡힌 시빌 파트너십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말했다. 영국 언론은 “결혼을 거부하고 동거를 선택한 330만 명은 배우자가 사망하더라도 상속 및 연금, 보험 권리를 받을 수 없었다. (시빌 파트너십의 확대 적용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영국의 이번 결정이 출산율을 높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다. 영국의 지난해 출산율은 1.76명으로 2003년 이래 최저였다. 프랑스의 경우 시빌 파트너십과 비슷한, ‘동거법’이라고 불리는 시민연대협약(PACs) 제도를 1999년에 도입한 뒤 출산율 하락세를 마감하고 상승세로 반전시킨 바 있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 신생아 77만 명 중 59.9%가 ‘결혼’하지 않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