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내일’에게 들이는 공은 각별하다. 분데스리가를 호령하며 ‘차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현역 생활을 마치자마자 다음에 해야 할 일을 고민 없이 ‘축구저변 확대’ ‘미래의 꿈나무 육성’으로 삼았다. 그래서 귀국과 함께 차범근 축구상을 만들었고 차범근 축구교실을 여는 등 어린 선수들 육성에 매진했다. 그 출발이 1988년,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올해 초 열린 차범근 축구상 30주년 기념식 행사 후 만난 차 감독은 “누가 나에게 시킨 것도 아니다. 미래의 꿈나무들을 키워야한다는 것은 나의 사명감이었다”고 전한 뒤 “나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그냥 독일에서 계속 지내려했다. 그런데 유소년 축구를 성장시켜야한다는 나와의 약속, 또 국민들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차범근 축구교실을 시작했다”고 과거를 소개했다.
불모지 같던 곳을 혼자 개척해야했던 자신의 어려움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던 까닭이다. 그가 내일에 대한 투자에 목말랐던 것은, 후배들이 자신과 같은 ‘어려운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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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그 꿈을 확장하고 있다. 차 감독은 지난해부터 ‘팀 차붐(TEAM CHABOOM)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책임질 꿈나무로 구성된 ‘팀 차붐’을 자신이 직접 이끌고 독일로 떠나 현지 클럽 유소년 팀과 함께 훈련하고 경기를 치르는 등 선진축구 문화를 경험하게 하는 이벤트인데, 지난해 1기에 이어 최근 2기 멤버들도 독일을 다녀왔다.
2기 원정단은 지난 8월말부터 7박9일 동안 프랑크푸르트, 다름슈타트,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독일 축구를 직간접적으로 맛봤다. 언뜻 그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냐 싶지만, 차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선수들이 아주 좋은 경험을 하고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이 경험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바로 내가 그랬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며 큰물로 데리고 나가는 이유를 에둘러 설명한 바 있다. 해본 것과 상상하는 것, 접해본 것과 이야기만 들은 것은 천지차이이기에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이다.
한국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아시아 유소년 선수육성 프로젝트 ‘팀 차붐 플러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첫 삽을 떴다. 지난 7월19일 중국 선전시에 위치한 샹그릴라 호텔에서 중국 국영기업 시틱그룹(CITIC) 산하 ‘중정문화체육발전관리유한공사(중정문체)’와 협약식을 갖고 본격적으로 ‘팀 차붐 플러스’의 시작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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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말의 일이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놀라운 만남을 가졌던 날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하던 차범근 감독은 “나중에 북한 아이들까지 함께 ‘팀 차붐’을 꾸려 밖으로 데리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말을 전했다. 날이 날인지라 감상에 젖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북한 아이들이 팀 차붐에서 함께 훈련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는 말을 나지막이 전했다.
그로부터 5개월여가 흐른 9월, 그때 판문점에서 만났던 남북 정상이 평양과 백두산에서 다시 손을 맞잡을 때 차범근 감독도 그 역사적인 장소에 함께 있었다. 종목을 막론 한국 스포츠계의 큰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 상징성만 가지고 동행하진 않았을 공산이 크다.
한 축구관계자는 “북한에서도 축구는 굉장한 인기 스포츠다. 경평전 부활을 비롯해 남북의 축구교류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할 인물로 차범근 감독만한 인물이 있겠는가”라면서 특별 수행원으로 북측을 다녀온 이유를 해석했다. 대한축구협회 측도 “만약에 북한과 중국, 일본이 함께 하는 월드컵 공동개최 추진을 위해서라면 차 감독보다는 축구협회장이 동행했어야 맞지 않을까”라는 말로 다른 이유를 추측했다.
지금 시점에서 섣불리 추진 상황을 공개할 수는 없으니 한동안은 짐작에 그치겠으나 어쩌면 그가 꾸는 꿈이 현실이 될 가능성이 전보다는 커진 상황이다. 불가능이 가능해지고 있는 시절이다. 이미 많은 것이 믿기지 않는 현실이 됐다. ‘축구 산타’ 차범근이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선물을 주는 그림도 결코 헛되다고 볼 수 없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