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국제부장
9·11테러 다음 해인 2002년 1월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이라크 이란 북한을 꼽았다. 당시만 해도 북한이 다른 두 나라에 비해 미국에 더 크고, 더 직접적인 위협이란 평가는 많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 년 만에 북한은 미국민 인식에서도, 정부 안보정책에서도 ‘가장 위험한 나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워싱턴포스트(WP)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간 ‘공포: 백악관 안의 트럼프’엔 미 행정부가 이 위험한 북한을 어떻게 다루려 했는지, 지금은 어떤지가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노벨 평화상까지 받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조차 2016년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 대북 선제 타격을 검토했다’는 내용부터 공포다. 그 계획은 “북한의 반격 과정에서 단 한 발의 핵무기만 한국에 떨어져도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접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가정(假定)도 공포고, 남한이 ‘북한의 핵 인질’이 돼버린 믿기 싫은 현실도 공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포 전략엔 동맹 한국과 적국 북한의 구별도 없어 보인다. 오래된 미국인 절친이 돌연 “그런데 너 남쪽에서 왔더라? 북쪽에서 왔더라?”라고 묻는 기분이랄까. 그러니 “한국이 (북한 안보 위협 때문에 미국의) 보호를 원할 때, 그때가 바로 우리가 (무역 관련) 재협상을 해야 할 때다. 우리가 지렛대를 갖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워터게이트’ 특종 기자인 75세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전례 없던 위험한 상황을 종종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 대통령이) 불안정한 북한 정권을 핵무기로 위협하는 건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평양의 성대한 환영으로 18일 시작된 3차 남북 정상회담은 20일 2박 3일의 일정을 분위기 좋게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다. 북한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기대하는 것도 북-미 간 대화 재개 ‘분위기’ 조성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두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나 ‘트럼프의 공포’를 해소하고 해결할 방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좋은 분위기가 언제 공포의 그림자로 뒤덮일지 모른다. 그나저나 죄도 없고 핵도 없는 착한 우리는 언제까지 북핵 공포, 트럼프 공포에 덜덜 떨며 살아가야 하는가.
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