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정치부장
―안녕하세요? 저 ○○○ 기자라고 합니다.
“미리 예고도 안 하고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2.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며칠 전인 지난달 중순. 민주당 A 의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 제한이란 문구가 떴다. 평소 아는 번호만 받는 터라 무시했다. 그런데 몇 차례 더 왔다. 하도 울려서 받았더니 당 대표 후보 중 한 명이었다. 다음 날 조찬모임을 하려는데 올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안 문제 때문에 자신의 전화번호를 숨겼다고 한다. A 의원은 “실명으로 전화하면 더 빨리 받았을 텐데 참 독특하다”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례의 주인공은 민주당 이해찬 대표다. 30년 넘게 정치를 한 만큼 이 대표와 관련한 에피소드와 평가가 많은데 그의 성격이나 성향에 대한 게 적지 않다. 똑똑하고 전략적인데 너무 원칙주의자다, 까칠해서 접근하기 쉽지 않다, 보수 궤멸론을 서슴없이 입에 올린다…. 전대 경쟁자였던 김진표 송영길 의원이 “이해찬 대표로 협치가 되겠느냐”고 공격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요새 이 대표가 변했다고 한다. 여의도 어딜 가도 “이해찬이 왜 그럴까”가 화제다. 취임 첫날 서울현충원에 가서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건 시작에 불과했다. 박 전 대통령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회의를 했고, 한때 동지였다 배를 갈아탔으니 더 미울 법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만나서는 평소 보기 힘든 미소를 지었다.
얼마 전엔 측근들도 당황한 장면이 있었다. 총리까지 지낸 이 대표의 평소 지론 중 하나는 “서서 인터뷰 안 한다”는 것. 그런 이 대표가 국회 복도를 걸어가던 중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내자 주요 이슈에 대해선 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 대표의 목표는 뭘까. 사실 이미 스스로 말했다. (최소) 집권 20년이다. 진보 지지층만으로는 20년 집권은 불가능하다. 중도보수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새로운 ‘집권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본질을 유지한 채 얼마든지 변하고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인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 이 대표를 당 정책위의장, 교육부 장관으로 기용하며 유달리 아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주변에 자주 하던 말이다. 지금 이 대표는 DJ 말처럼 20년 집권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정치인생 30년의 내공을 담아 변화무쌍한 춤을 추고 있다. 이 대표의 강성 이미지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노렸던 한국당으로선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