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 놀이터/김성원 지음/256쪽·1만5000원·빨간소금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민과 청소년이 참여해 직접 목공 기술을 배우고 놀이터 구조물을 만드는 모습. 현지 비영리 단체들은 ‘건축 영웅’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들에게 스스로 학교 운동장과 놀이터를 혁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놀이터의 조성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지역공동체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한다. 빨간소금 제공
추억도 좋고 공상도 좋다. 일단 넓은 공터를 떠올리고. 거기에 뭔가를 채워 넣어보자.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신나고 즐거운 기분만 꼭 붙들면 된다. 충분히 떠올렸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되새김질해보길. 당신의 ‘놀이터(playground)’는 어떤 모습이었나.
삭막하거나 뻔한 풍경만 가득했더라도, 너무 괘념치 말자.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다. 실제로 동네 가까운 놀이터를 보라. 그네와 시소, 미끄럼틀…. 언제부터인가 대다수가 그냥저냥 ‘있으니까 있는’ 공간이 돼버렸다. 심지어 가끔은 ‘주폭(酒暴) 터’나 ‘우범 터’란 이름이 더 어울릴 정도로.
저자는 이런 놀이터는 어린이는 물론이고 사회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그래서 제목에도 등장하는 ‘모험 놀이터’의 도입을 적극 권장한다. 모험 놀이터란 다양한 형태를 띠긴 하는데, 아이들의 본능을 일깨울 수 있는 곳을 일컫는다. 예컨대, 흙과 목재 철재더미만 있더라도 만들고 뒹굴고 부딪칠 수 있어야 한다. 당연히 안전이나 청결 문제로 께름칙할 터. 하지만 실제 해외에서 운영하는 모험 놀이터를 보면 규칙만 잘 지키면 사고 발생률도 기존 놀이터보다 훨씬 떨어진다고 한다.
“놀이 기구의 수량이 놀이의 즐거움을 보장하지 못한다. 놀이 기구들이 상호 연결성을 갖고, 아이들 스스로 놀이 경험과 놀이의 경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험과 탐색의 요소가 있어야 하고 상상이 깃들 여지가 있어야 한다.”
‘마을이…’는 신선하다. 무덤덤하게 지나치던 놀이터란 장소를 다시 보게 한다. 일단 놀이터가 이런 역사와 함의를 지녔다는 게 놀랍다. 게다가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진정한 놀이터를 아이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만든다. 특히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고개를 끄덕일 대목이 많다. 저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기성세대로서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 이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데, 공감 가는 바가 적지 않다.
다만 책이 다소 결연한 분위기인 건 아쉽다. 양질의 정보와 내용을 담은 건 좋은데, 좀더 낙낙하게 정리했으면 어땠을지. 숨통을 틔워주는 놀이터를 제안하는 글이 어깨가 딱딱하게 굳게 만들면 안 되지 않을까. 이 운동이 더 많은 지지를 얻고 성공하길 바라는 뜻에서 사족을 붙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