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1심 무죄]무죄 판단 근거 핵심 쟁점은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재판이 진행 되는 모습. 법정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어 삽화로 현장을 재현했다.
○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 떨어져”
재판부는 먼저 김 씨가 성관계 거부 의사를 충분히 표현하지 않았다고 봤다. 두 사람이 첫 성관계를 한 지난해 7월 안 전 지사가 “안아 달라”고 요구하자 김 씨는 바닥을 보며 중얼거리는 방식으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안 전 지사를 살짝 안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 달 서울의 한 호텔에 투숙하게 된 안 전 지사가 김 씨에게 “씻고 오라”고 했을 때 김 씨가 별다른 저항 없이 응한 점, 이후 스위스 출장 당시 김 씨가 전임 수행비서로부터 “안 전 지사의 객실에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도 방에 들어간 점 등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건 이후 김 씨의 행동도 김 씨의 자유의사가 제압당한 상태에서 성관계가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근거로 판단했다. 첫 성관계 몇 시간 뒤 김 씨는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한식당을 찾아 식사를 하려고 노력했고, 당일 저녁에는 안 전 지사와 함께 와인바를 간 점 등을 예로 들었다. 재판부는 “김 씨가 지인과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를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피해를 잊고 수행비서 일을 열심히 수행하려 한 것뿐이라는 김 씨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마지막 성관계를 맺었던 올 2월, 대전에 있던 김 씨가 밤에 안 전 지사의 연락을 받고 바로 서울의 한 오피스텔로 찾아간 것도 의문이라는 게 재판부의 시각이다. 당시 김 씨는 안 전 지사의 수행비서가 아닌 정무비서 신분이었고, 당시 안 전 지사와 나눈 텔레그램 메시지 대화 내용을 삭제한 점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 동의 안 한 성관계라도 현행법상 처벌 어려워
재판부는 김 씨가 안 전 지사와의 성관계를 거절하려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을 가능성은 인정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유죄 여부는 피해자가 어떻게 느꼈는지가 아니라 피고인이 위력을 행사했는지에 달려 있어 가능성만으로 안 전 지사를 처벌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북미와 유럽 등 10개국에서는 상대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음에도 성관계를 맺은 경우 강간으로 간주하거나(No Means No rule), 상대가 적극적으로 성관계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성관계를 맺은 경우까지 처벌하는(Yes Means Yes rule) 입법례가 있다. 독일에서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황이라도 위계관계에서 발생한 성관계는 무조건 ‘비동의 간음’으로 간주해 처벌한다. 재판부는 “이 같은 새로운 처벌 규정을 도입할지는 입법 정책적 문제이고 근본적으로는 사회 전반의 성문화와 성인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