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참상 알린 캄보디아 기록센터장 인터뷰
“비가 쏟아질 때면 비가 나쁜 기억을 모두 씻어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39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기억은 얼룩처럼 남아있어요.” 창 소장 역시 킬링필드의 피해자였다. 크메르루주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 당시 15세이던 그는 굶고 있는 누이를 위해 버섯을 훔치다 붙잡혀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고문을 당했다. 크메르루주가 학살한 약 200만 명의 양민 중엔 그의 아버지와 형제 5명, 60명 가까이 되는 친척들도 있었다.
그는 “프놈펜의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싶었다”며 자료 수집 계기를 설명했다. 1995년 DC-CAM을 설립한 그는 크메르루주 정권과 관련된 수백만 건의 자료와 사진을 모았다. 그는 캄보디아전범재판소(ECCC)에 자료를 제공했고 직접 증언대에도 서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단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의 전쟁 범죄로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그는 “(전쟁 범죄가) 일어나지 않은 척 할 수는 없다”며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피해자의 마음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힘들어도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며 “피해자들이 죽어도 기억은 이어지기 때문에 역사를 지워버릴 순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48년 유엔에서 제노사이드 금지 협약이 채택됐지만 이후 세계가 제노사이드를 예방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세계에 번지고 있는 ‘무슬림 혐오’ 현상과 관련해 “혐오를 방치한다면 사람들은 계속 편견을 갖게 될 것이고 제노사이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과거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세계 각국이 제노사이드에 대해 교육하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놈펜=위은지 기자 wiz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