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긴 27일 밤 12시 경.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 택시 승강장에는 KTX에서 내린 승객들이 몰려들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60여 명의 승객이 50m 넘게 줄을 서서. 부채질을 하거나 휴대용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었다.
‘폭염 불금’에 택시잡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승강장으로 들어오는 택시는 5분에 1대꼴. 승객들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택시를 불러봤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30분 넘게 택시를 잡지 못하자 도로변까지 나가는 승객도 보였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은 목적지를 묻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때 줄을 서 있는 시민들에게 한 남성이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그는 “저기 택시가 있다. 더운데 왜 여기서 기다리느냐”고 조용히 말을 건넸다. 캐리어를 든 한 여성이 땀을 닦으며 남성을 따라갔다. 승강장 근처에 주차된 검은색 승용차에 탑승했다. 일반 차량을 이용해 불법으로 승객을 태우는 이른바 ‘나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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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1시경 이모 씨(21)가 경기 평택시로 가는 택시를 잡지 못해 나라시 운전자와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이 씨는 “12만 원에서 8만 원으로 가격을 깎았지만 부담된다. 더워 죽겠는데 집에 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도 나라시 택시의 주 고객이다. 국내에서 불법인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Uber)로 착각해 먼저 운전자에게 접근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외국인이 “강남, 하우 머치”라고 물어보자 운전자 한 명이 2만 원을 뜻하는 손가락 두 개를 폈다. 외국인이 “오케이”를 외치며 흰색 카니발 차량에 탑승했다.
승강장 주변에 모인 10여 대의 나라시는 일반 승용차, 렌트카 등 다양했다. 인천공항이라 적힌 용달 화물차량도 눈에 띄었다. 대전에서 올라온 운전자도 있었다. 그는 “대전에서 올라오느라 힘들었다. 오늘 20만 원은 찍고 가야 한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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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서 맞은편에서 버젓이 불법 영업
나라시는 운전자들의 범죄경력조회가 되지 않아 승객이 범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합승과 바가지요금 등 각종 불법 행위도 벌어진다. 서울역 택시 승강장 큰길 바로 맞은편에는 경찰서가 있었지만 단속은 없었다. 서울역파출소 관계자는 “승객들의 신고가 거의 없고 단속할 인원은 한정돼 있어 매번 단속하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김민찬 인턴기자 서울대 미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