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영 경제부장
문 대통령은 최근 언론 보도와 야권의 주장을 두고 이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보는 20일자 A3면에 “여름철 전력 사용량이 연일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정부는 원전 가동률을 높여 급증한 전력수요를 감당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탈원전 정책이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후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 비슷한 보도가 이어졌다. ‘현재 정비 중인 원전을 최대한 빨리 다시 가동하고, 일부 원전의 정비 시기를 늦추겠다’는 한국수력원자력의 22일 발표는 논란에 더욱 불을 지폈다.
정부는 이런 언론 보도에 대해 원전 가동을 늘리는 것은 이번 폭염 때문이 아니라 이미 4월에 결정된 것이고, 탈원전 정책은 당장 원전을 줄이는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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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기치 못한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원전을 더 돌려야 하는 상황이니 탈원전 정책의 타당성을 다시 짚어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왜곡’으로 몰아붙이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문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주목하는 더 큰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이념적 도그마에 빠져 상대편 비판에 무조건 귀를 닫고 있다는 징후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며칠 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통받고 있는 소상공인들에 대해 “서민경제에 돈이 돌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겠다”며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 정책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물론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까지 우리나라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추가 인상을 자제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정부를 탓하지 말고 경제구조를 탓하라니, 정부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할 말인가.
그런가 하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고용이 감소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최근 고용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조선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사실을 주무부처 장관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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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하지 않는 정권이 어디 있는가. 실수를 바로잡으며 때로는 완급을 조절하고 때로는 돌아가다 보면 성공한 정권으로 기억되는 법이다.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