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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 봤어?” 입소문 탄 독립출판물, 베스트셀러로 우뚝

입력 | 2018-07-25 03:00:00

‘독립출판물’ 대형 서점서도 통했다




주요 독립출판물 서점은 매달 200∼300종의 새 독립출판물 판매 문의를 받는데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건 30종가량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독립출판물 북페어 ‘언리미티드에디션’에는 1만8000여 명이 몰렸다. 독립출판물 서점 유어마인드의 서가. 유어마인드 제공

신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지음·흔·1만3800원). 한 점의 가식도 보이지 않는 제목 때문에라도 일단 표지를 봤다면 쉽게 지나치기 힘들다. 책은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를 앓은 저자가 상담 치료를 받은 이야기다. 처음에는 ‘당신의 고통에 독자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읽다보면 “착한 게 아니라 ‘찐따’ 같아요” 같은 솔직한 고백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타인의 작은 행동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 아파해 본 사람이라면 ‘내 얘기다’ 싶을 게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죽고 싶지만…’은 주간(7월 17∼23일) 종합 베스트셀러 3위, 에세이 부문 1위에 올랐다. 구매자 가운데 20, 30대 여성이 절반 이상이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표지.

이 책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올해 2월 나온 ‘독립출판물’이다. 처음에는 책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도 없이 독립출판물 전문서점(인디 서점)에서 팔렸다. 독자의 호응을 눈여겨보던 한 출판사 편집자가 1인 출판사를 차려 정식으로 책을 냈다. 6월 20일 초판 1쇄가 나온 후 벌써 8쇄까지 찍었다.

인디 서점 중심으로 유통되던 독립출판물이 인터넷·대형 서점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얻으며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3, 4월 만화·라이트노벨 분야 베스트셀러 3위(예스24 기준)까지 오른 책 ‘며느라기’(수신지 지음·귤프레스·2만 원)도 독립출판물이다. 불합리한 결혼문화를 소재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재하던 웹툰을 묶었다. 저자는 이전에도 투병기를 담은 책 ‘3g’을 자비로 제작·판매했던 독립출판물 작가다. 이번에 달라진 건 ISBN을 등록해 유통된다는 것뿐이다. 독립출판물로 시작된 에세이 ‘달의 조각’(하현 지음·빌리버튼·1만3800원)도 지난해 11월 에세이 분야 11위에 올랐다.

양질의 독립출판물을 묶은 문고본 시리즈도 정식 출간됐다. 현재 15권까지 나온 ‘청춘 문고’(디자인이음)다. 기존 출판시장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개성 넘치는 에세이, 시, 논픽션 등이 포함됐다. 1만 권가량 판매된 책도 있다. 서상민 디자인이음 편집장(43)은 “독립출판물의 성격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목표로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신지 작가의 ‘며느라기’ 표지.

독립출판물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원래는 기존 출판계에서는 출간되기 힘들 정도로 개성이 강하고 실험적이면서 인디 서점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출판물을 뜻했다고 본다. ISBN을 등록하지 않아 법적 도서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형 서점 유통을 염두에 두면서 적은 부수만 만들어 테마형 서점에 두고 독자의 반응을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런 경우는 1인 출판과 독립출판이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독립출판물은 상업성과 거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의 강영규 대표는 “독립출판물 작가들은 돈을 벌려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다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서점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도 “이들은 자신의 작업이 어떻게 지속될지 모르는 채 당장 하고픈 이야기에 집중해 책을 내는 편이다”고 했다.

독립출판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서상민 편집장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를 책으로 출간하기가 수월해져 독립출판은 출판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