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사회에서 전사가 된다는 것은 특권이며,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고대 게르만 사회에서 전사 계급은 18세기 부르주아와 유사한 지위를 누렸다. 전쟁 규모가 커지고, 전사가 늘어나자 병종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제한하는 아이디어가 탄생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중장보병으로 근무한 사람들이 선거권을 가지고 의원으로 선출될 자격도 얻었다. 반면 경보병이나 수병들은 참정권이 제한됐다. 소크라테스도 중장보병으로 참전했고 그 덕에 의원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
이처럼 병역이 사회적 특권과 연결된 시대라면 여성의 입대는 에둘러서 막았을 것 같다. 그러나 꼭 그렇지도 않다. 중국 한나라는 황릉을 조성할 때, 순장을 대신해서 토용을 만들어 넣었다. 궁녀, 환관, 농민, 군대 등 별별 토용이 다 있는데, 그중에는 여군 기병의 토용도 있다. 이들은 한나라에 포섭된 유목기병인 것 같은데 이 중에 여성 전사도 있었다. 이 토용들의 자세를 보면 활을 쏘고, 창으로 찌르고, 돌진하는 등 남성 전투기병과 다름없는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병력이 특권이고 남성이 특권을 누리던 시대에 보호받던 여성들이 전쟁에 참여한 이유는 병력 부족을 만회하려는, 즉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징병제, 모병제 논쟁에다 대체복무,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 이유가 절박함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