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훈 1934∼2018] 소설가로 희곡작가로… 故 최인훈의 삶과 문학
인간 존재의 본질 규명에 주력한 소설가 최인훈의 삶은 광복,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했다. 4·19혁명이 있었던 1960년 ‘새벽’지에 발표한 고인의 대표작 ‘광장’은 문단 안팎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고인은 2011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사회를 휩쓸고 있던 4·19 정신에 부합했기에 호의적으로 평가된 면이 있다”며 “주인공 이명준의 실종으로 끝나는 결말은 기존 지성이나 권위, 사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나름의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한, 자신이 납득할 만한 그런 인생을 살겠다는 의식의 발로”라고 말했다.
‘광장’이란 엄청난 작품에 다소 가려졌지만, 고인은 한국 문학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작품을 여럿 남겼다. ‘회색인’(1963년) ‘서유기’(1966년)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1969년) ‘화두’(1994년) 등은 발표 이후 꾸준히 주목받아 왔다.
고인은 2003년 단편 ‘바다의 편지’를 끝으로 신작을 내지 않았다. 그러나 수차례 ‘여전히 집필 중’임을 시사했다. 동아일보 인터뷰에선 “예술적 훈기(薰氣)가 불어오길” 기다린다고도 했다. 유족에 따르면 마지막 병상에서도 아직 공개하지 않은 본인의 글을 다듬었다.
장석주 시인(63·문학비평가)은 “최인훈은 ‘남북조 시대’의 작가 중에서 가장 지적인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타계로 한국 문학은 한동안 많이 적막하겠다”고 평했다. 김종해 문학세계사 대표(77·시인)는 “한국 소설의 큰 기둥이 쓰러지셨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시인은 “1993년 러시아 여행을 함께 갔고, ‘은평클럽’이란 작가 모임도 함께했다”며 “고인의 소설처럼 이야기가 살아 있는 작품은 떠오르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고 최인훈 선생(가운데)의 첫 희곡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에서 온달모(母)를 연기한 배우 박정자 씨(왼쪽)와 연극 연출가 한태숙 씨. 동아일보DB
고인은 훌륭한 희곡 작품도 다수 남겼다. 1970년 발표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비롯해 ‘둥둥 낙랑 둥’(1978년) 등 7편을 써 관심을 받았다. 첫 희곡 ‘어디서…’ 초연에서 온달모(母) 역으로 제7회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배우 박정자 씨(76)는 “군더더기 없고 품격 있는 대사들이 잊혀지지 않는다”며 “고인은 연습장에 자주 오셔서 조용히 리허설을 지켜보고 가시곤 했다. 희곡과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떠올렸다.
고인은 올해 초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늦게 발견해 이미 암세포가 많이 퍼진 상태였다. 유족에 따르면 그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지난 몇 달간 한반도 해빙 분위기를 꼼꼼히 지켜봤다.
유족은 “통일보다 재통일이 더 위대하다. 처음부터 통일돼 끄떡없는 것보다 서로를 잡아먹을 듯했다가 여태까지의 흐름을 거슬러서, 그렇게 다시 통일된다면 참 위대한 일이다. 그것이 변증법이라는 말의 진정한 가치”라는 고인의 말을 전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