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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에 헌납한 치명적 자살골

입력 | 2018-07-18 03:00:00

[코너 몰린 트럼프]트럼프 정상회담 발언, 거센 후폭풍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미-러 정상회담을 자신의 러시아 대선 개입 연루 의혹을 해명하는 계기로 삼으려다가 ‘반역자’라는 초유의 비난에 직면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정보기관보다 푸틴 대통령의 말을 더 신뢰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두고 미 여론이 들끓고 있다.

○ 트럼프 “미국은 어리석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 시간) 핀란드 헬싱키의 대통령궁에서 가진 푸틴 대통령과의 단독·확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번 회담에서 이 문제(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논의했다”며 “나의 정보요원들을 신뢰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극도로 강하게 부인했다. 나는 (러시아가 그렇게 했을) 어떤 이유도 보지 못했다”고 러시아를 대놓고 두둔했다. 그러면서 “공모는 없었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은 어리석었고 우리 모두가 어리석었다”며 미국의 잘못으로 돌렸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의 e메일을 해킹해 폭로한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결과를 다른 사람도 아니라 의혹의 중심에 있는 푸틴 대통령이 지켜보는 앞에서 미국 대통령이 부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번 사건을 수사해 온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와 FBI를 겨냥해 “나는 (러시아 관련 의혹) 조사가 우리나라에 재앙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갖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단절시켰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푸틴 대통령도 “선거 과정을 포함한 미국 내정에 러시아는 절대 개입하지 않았고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소문이 아니라 사실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공모가 있었다는 단 하나의 증거라도 있느냐. 이건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바랐느냐’는 질문에 “그(트럼프)는 후보 시절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겠다고 했고 다른 사람(클린턴)은 다르게 말했는데 우리와 잘해 보겠다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미 법무부는 이날 회담 직전 대선 당시 클린턴 후보 캠프 등에 대한 전산망 해킹 혐의로 12명의 러시아 인사를 기소했다.

○ “반역적 발언” “수치스러운 대통령” 비난 가열

미 정가는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났다.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의 발언들은 어리석었을 뿐 아니라 푸틴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간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기자회견은 중범죄나 반역 그 이상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야당인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소속된 공화당에서도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번 미-러 정상회담을 “비극적 실수”라고 말하며 “트럼프와 푸틴은 똑같은 각본을 보고 얘기하는 듯했다”고 비꼬았다. 공화당 서열 1위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러시아가 미 대선에 개입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미 의회는 민주당의 요구로 백악관 국가안보팀에 대한 청문회 개최, 미 정보기관들에 대한 대통령의 공식적인 지지 표명, 러시아 제재 확대, 러시아 스파이 12명의 미국 소환 등 4가지 대책을 행정부와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트럼프의 독설에 익숙한 미 언론도 이번 기자회견에 대해선 ‘말을 잃을 지경(stunning)’, ‘입이 딱 벌어질(jaw-dropping) 정도의 충격’ 등의 혹평을 내놨다. 친(親)트럼프 매체인 폭스뉴스의 앵커와 기자들까지도 트위터를 통해 “역겹다” “수치스럽다” 등 비난을 쏟아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러시아 두둔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 “트럼프가 푸틴에게 큰 약점을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는 푸틴 대통령에게 저자세로 일관한 트럼프 대통령보다 푸틴과의 인터뷰에서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펼친 폭스뉴스 앵커 크리스 월리스가 더 많은 여론의 지지를 받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 언론은 이번 논란으로 행정부 인사들이 줄줄이 사임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콕 집어서 비난한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은 물러날 것이 확실시되며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도 책임을 지고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의회 전문지 ‘더힐’은 전했다.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sunshade@donga.com / 정미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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