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온라인 동영상서비스 ‘넷플릭스’, 한국에 콘텐츠 제작투자 대공세
넷플릭스의 ‘미스터션샤인’에서 고국에 돌아온 조선계 미군 장교 이병헌. tvN 제공
최근 방영된 tvN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한 장면. 구한말 의병인 주인공(김태리)은 동지인줄 알았던 미군 저격수(이병헌)의 속내를 궁금해하며 이렇게 되뇐다. 외풍에 속절없이 흔들렸던 조선의 개화기는 지금의 미디어 시장과 똑 닮았다. 기차, 호텔 등 외국에서 건너온 신식 문물이 백성의 마음을 훔쳤듯 글로벌 미디어 공룡은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한국 안방을 노크 중이다. 이 드라마 역시 제작비(400억여 원) 대부분을 미국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와 공급계약을 통해 회수했다.
190여 개국, 1억2500만 가입자에 월 매출 1조 원이 넘는 넷플릭스가 국내 미디어산업 열차에 올라탔다. 미국에서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추월하며 ‘코드커팅(유료방송 해지)’ 주역으로 떠오른 회사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TV방송시대는 2030년까지만 지속될 것”이라며 올드 미디어에 선전포고를 했다. 넷플릭스는 개화기인 국내 미디어 시장의 포식자일까, 조력자일까.
상황이 반전된 건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에 직접 나서면서부터다. 당초 국내 미디어업계에서는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을 직접 공략하기보다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지만 오산이었다. 넷플릭스는 tvN 등 국내 방송사와 콘텐츠 제휴를 맺은 데 이어 ‘옥자’ ‘범인은 바로 너’ ‘킹덤’ 등 콘텐츠 제작에 직접 참여했다. 케이블과만 협업했던 플랫폼 전략도 최근 LG유플러스 등 통신사까지 확대해 적극적으로 변했다.
넷플릭스의 반전 공세에 기성 플랫폼들은 당황하고 있다. 플랫폼 업체들이 영향력을 앞세워 콘텐츠를 값싸게 구매하던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플릭스의 올해 전 세계 콘텐츠 투자비용은 총 80억 달러(약 9조 원). 미스터션샤인의 경우 넷플릭스가 회당 최소 12억 원씩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드라마의 회당 제작비가 5억 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2배가 넘는 액수다.
하지만 넷플릭스라는 ‘메기’의 등장이 미디어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안정적인 해외 매출을 보장하고 막대한 투자 및 구매자 역할로 국내 콘텐츠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넷플릭스를 타고 국제무대에서 스타성을 인정받은 국내 연출자, 작가, 배우들의 몸값이 뛸 수도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 우리 플랫폼과 유통 채널들은 적극적인 투자로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콘텐츠를 싸게 공급받아 수익을 취하는 구조였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OTT 사업자는 전기통신사업자 중 부가통신사업자로 과기정통부 소관이지만 이용자 보호 같은 사후규제는 방통위 소관이다. OTT사업자는 당국에 신고만 하면 돼 별다른 사전 규제를 받지 않는다. 반면 경쟁관계인 유료방송은 방송법이나 IPTV법의 규제를 강하게 받는 점에서 역차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도 지난해 방통위 추진과제를 설명하며 “방송통신융합은 심화됐는데 거꾸로 우리는 분화돼 간다.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정책적인 접근보다 사업자들의 각성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우리 OTT나 방송 플랫폼은 비슷한 요금제에 비슷한 콘텐츠 제공으로 차별점이 없다. 파편화로 단독으로 투자할 여력이 적다면 협업을 해서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