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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김지영]‘사표’가 행복 보증수표는 아니다

입력 | 2018-07-11 03:00:00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

또 한 명의 지인이 퇴사하고 세계여행을 떠났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큰 배낭을 멘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를 남겼다. ‘#지금이아니면안될것같아서.’ 그의 선택을 응원하고 그 확신이 부러운 한편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나의 5년 전을 떠올렸다. 합격자 발표일, 긴장을 추스를 길이 없어 무작정 집을 나섰다. 조조영화를 보고 이 골목 저 골목을 훑고 다녀도 시간은 더디게만 갔다. ‘최종 결과’, 메일의 제목만으로 가슴이 내려앉았다. 눈을 질끈 감고 열어본 메일에는 그토록 바라던 합격이 있었다. 끝났다. 안도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엄마, 나 합격했어!” 그토록 간절했다, 그땐.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퇴근을 위해 하루를, 주말을 위해 평일을 대기하는 삶이 이어졌다. 평일의 하루 8시간 혹은 그 이상은 수단으로서만 존재했다. 행복한 삶은 SNS의 사각 프레임 안에서 퇴근 후, 주말로만 편집됐다. 회사에서 멀어질수록 행복의 감도는 높아졌다. 행복은 회사 안보다는 바깥에 있었다.

사춘기 시절 방황의 자유를 빼앗긴 이들은 서른 즈음 뒤늦은 방황을 시작한다. 이유는 하나, 행복하지 않아서.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했나’ 하는 회의. 행복할 권리를 되찾겠다는 호기로 사표를 던진다. 직장인 사춘기 혹은 오춘기라 불리는 전대미문의 집단방황 현상. 여행으로 유학으로 대학원으로 하나둘 회사를 떠나는 이들을 보며 묘하게 뒤처지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퇴근은 기다리면서 퇴사는 하지 않는 소시민성에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퇴사가 유행이다. 한 직장을 정년까지 다니던 아버지 세대에서 개인의 경력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업(業)’을 탐색하는 세대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서점가를 잠식한 퇴사 열풍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당장 검색만 해도 관련 콘텐츠가 넘쳐난다. 하지만 대부분 회사 생활이 얼마나 부당한지 퇴사를 결심한 당신이 얼마나 용기 있는지 이야기할 뿐이다.

퇴사만 하면 행복해질까. 증상에 따라 처방을 달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퇴사가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설파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멈추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취업준비생 시절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조급함이었다. 퇴사를 이유로 조급해진다면 외려 시간이 늘어도 마음은 쉴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퇴사인지 단 며칠간의 돌아봄인지 따져볼 노릇이다.

중요한 건 퇴사 여부가 아니다. 퇴사는 행복해 보이겠다는 선언적 의미와 다름없다. 물론 이후 업그레이드된 경험과 삶의 태도로 존경스러운 삶을 꾸려나가는 이들도 많다. 다만 경계하고 싶은 것은 당장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흔한 마음이 유행처럼 번져 무모한 퇴사로 이어진다면 이후 또다시 같은 질문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왜 나는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은 어떠한 상태가 아니라 진행하는 한 방향’이라는 말이 있다. 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나의 행복의 방향이어야 한다. 돌아보니 입사하지 않아도 괜찮았듯 가끔 불행해도 퇴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100% 행복으로만 가득 찬 일상은 어디에도 없다. 더 이상 남의 손에 이끌려 선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지영 원스토어 eBook사업팀 매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