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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입 험악해진 北… 美에 종전선언 재촉하며 CVID엔 미적

입력 | 2018-07-09 03:00:00

[위기의 비핵화 협상]北美 ‘강도’ 설전… 폼페이오 ‘빈손 방북’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은 것이라면 전 세계가 강도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8일 북한이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 비핵화 요구만 들고 왔다”고 비난한 데 대해 이같이 맞받아쳤다. 1박 2일의 방북 기간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폼페이오 장관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9분간의 발언 중 대북 제재를 12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마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제 더는 북한 핵 위협은 없다”고 장담한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반응이다.

○ 김정은 못 만나고 강도로 몰린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하루 앞둔 5일(현지 시간) “이번 방북은 북-미 간 성과를 검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조야에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성과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1박 2일간 9시간에 걸쳐 이뤄진 고위급 회담은 사실상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됐다.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합의는 물론이고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내놨던 ‘선물’인 미군 전사자 유해 송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엔진 시험장 폐기에 대한 확실한 시기도 못 박지 못했다.

특히 북한은 폼페이오 장관이 7일 평양을 떠나며 “비핵화 시간표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히자마자 몇 시간 뒤 폼페이오를 ‘강도’라고 비난하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방침을 밝히자 앞선 비난 성명에 대한 사실상의 사과 입장을 담은 ‘정중한’ 담화문을 발표했던 북한 외무성이 다시 태도를 바꿔 미국에 날을 세운 것. 북한은 외무성 담화문에서 북-미 고위급 회담의 의제로 △정전 65주년(7월 27일) 종전선언 발표 △ICBM 엔진 시험장 폐기 △미군 유해 발굴 실무협상 등을 제기했지만 미국은 비핵화 대상 핵시설의 신고와 검증을 일방적으로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이 회담에서 끝까지 고집한 문제들은 이전 행정부들이 고집하다가 대화 과정을 다 말아먹고 불신과 전쟁 위험만을 증폭시킨 암적 존재”라고 했다.

특히 북한은 “합동군사연습을 한두 개 일시 취소한 것을 큰 양보처럼 광고했지만 극히 가역적인 조치로 우리가 취한 핵시험장의 불가역적인 폭파 폐기 조치에 비하면 대비조차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가 핵 실험장 폐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만큼 ICBM 엔진 시험장 폐기 등 추가 조치를 위해선 종전선언을 비롯한 가시적인 체제 보장 조치를 내놓으라는 얘기다.

○ 대화 판은 깨지지 않은 만큼 협상은 이어질 듯

북한의 예상치 못한 반격에 폼페이오 장관은 비핵화 완료 전 대북 제재 완화 불가 방침을 거듭 강조하며 압박에 나섰다. 폼페이오 장관은 8일 회견에서 북한이 CVID 요구를 ‘강도’에 빗댄 데 대해 “비핵화가 완전히 이뤄질 때까지 제재 이행이 계속될 것이다.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 보장을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경제 제재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종전선언을 요구한 북한에 ‘비핵화가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앞으로 수일, 수주 안으로 미국이 지속적으로 제재 이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보게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와 관련해 추가 조치를 내놓을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향후 북-미 관계는 지난달 싱가포르 회담 전후로 절정에 달했던 해빙 무드와는 전혀 다른 냉기류를 피해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내 여론이 빠르게 악화되면서 트럼프 행정부 내 ‘대화파’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수도 있다.

다만 북-미가 비핵화 신고, 검증 등을 논의할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하며 대화의 판은 깨지 않은 만큼 비핵화 협상을 위한 실무접촉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킹그룹을 이끌 대표로는 ‘판문점 채널 구원투수’인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뢰심을 아직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등판’을 요청한 점도 주목을 끌고 있다. 김정은은 폼페이오 면담을 거절한 대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제안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미 정상이 아직 성사되지 않은 핫라인 통화나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문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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