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신이현 작가
우리에게 동네 어르신 사과밭이 넘어온 날은 겨울이었다. 잎이 없어 땅과 나무의 상태를 살피기에 좋았다. 늙거나 어린 나무, 병들거나 비틀린 나무, 죽어가거나 죽어버린 나무…. 대부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땅도 사막화돼 가고 있었다. 그래도 좋은 것이 있다면 햇빛이었다.
“소똥 두 양동이가 꼭 필요해.”
“사람은 섭취한 음식을 거의 다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똥으로 나왔을 때 별로 써먹을 양분이 없어. 닭이나 돼지의 똥은 질소가 너무 많이 함유돼 있어 토양을 오염시켜. 소똥이 좋은 건 풀만 먹기 때문이지. 무엇보다 되새김질을 통해 음식물이 길고긴 소의 장을 통과하는 동안 건강한 미생물들이 생성된단 말이야. 균형 잡힌 최고의 영양 똥이라고 할 수 있어.”
나는 농부의 말에 감복돼 소똥 찾아 삼만 리를 시작했다. “혹시 소똥 구할 데 있을까요? 아니, 그냥 소똥은 안 되고 유기농 풀을 먹고 자란 소의 똥이 필요해요.” “소똥은 어데 쓰려고?” “증폭제 만드는 데 쓰려고요.” “증폭제는 또 뭐꼬?” “생명역동농법에서 땅의 기운을 살리는 데 필요한 약재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야가 무슨 씨나락 까묵는 소리를 해쌌노.” 소똥 구하기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평화나무 농장을 알게 되면서 해결되었다. 놀랍게도 그곳의 두 분은 우리와 같은 농업 방식인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계셨다.
“그런데 소똥 얻는 거 그렇게 쉬운 일 아니에요. 소들이 똥을 누면 밟고 다녀 바닥에 깔린 짚이랑 섞여 버리거든요. 우리 남편이 양동이를 들고 소 궁둥이를 따라다녀야 해요. 똥을 누면 잽싸게 양동이에 퍼 담아야 하거든요.”
얼굴도 모르는 웬 여자가 소똥 달라고 매달리니 농장 안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하지만 좀 주세요! 이렇게 해서 평화농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는데도 동지가 필요하다. 생명역동농법 하면 사람들은 ‘생… 뭐, 뭐라고?’ 하는 표정이 된다.
“이 농법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농부가 농작물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땅도 키운다는 것이지.”
어찌 되었거나 밤하늘의 별을 봐서 나쁠 건 없다. 소똥도 구했으니 이제 하늘의 별이나 헤야겠다. 별 하나에 지렁이, 별 하나에 사과, 별 하나에 포도, 별 하나에 소똥….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하나씩 부르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이는 시인뿐만 아니라 농부도 있다.
신이현 작가
※프랑스인 남편 도미니크 에어케 씨와 충북 충주에서 사과와 포도 농사를 짓고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