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데이비드 런시민 지음·박광호 옮김/480쪽·2만3000원·후마니타스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과도한 음모론을 바탕으로 미국이 처한 곤경의 책임을 외부에서 찾는 포퓰리스트라고 평가했다. 그의 지지층 가운데 부자와 빈자가 서로 공격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도 저자는 진단했다. 동아일보DB
정치사상, 국가론, 대표제론을 연구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인 저자는 이 같은 대비는 체제에 적용해 봐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민주국가에서는 항상 사회 문제가 심각하고, 체제가 위기에 처했다며 경고하는 언론이 있다. ‘미친’ 지도자가 나라를 벼랑으로 이끌어 가면 투표로 그를 해임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길게 보면 안정된 민주국가에서는 실수가 발생해도 재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런 민주주의 체제가 오래 정착되면, 체제에 대한 ‘자만’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실수가 고착되지 않는다고 해서 실수를 더 이상 저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위안은 특유의 현실 안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되풀이된다. 민주국가는 ‘최악의 사태가 설마 일어나겠어?’라는 안이함에 무모해질 때가 있다. ‘민주주의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어때?’라는 생각에 나태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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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은 암울했던 해다.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었다.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했고, 1차대전 뒤 민주국가로 출발한 나라 대부분이 권위주의 체제로 돌아간 상태였다. 문제는 1929년 발생한 경제대공황의 수렁이었다. 볼셰비즘과 파시즘은 단호하게 대응했다. 소련의 스탈린 같은 독재자들은 유권자들과 타협하느라 발목이 잡히지 않았다. 소련의 국민경제발전 5개년 계획은 성과를 내고 있었다.
반면 민주국가의 대응은 지리멸렬했다. 일단 너무 느렸고, 정권 교체에 따라 변덕스러웠다. 그러나 1933년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인 불황 대책 법안을 통과시켰다. 달러의 금 태환을 중단하고 달러를 평가절하해 미국 경제를 부양했다. 그는 독재자보다 훨씬 적은 권한을 가졌음에도 국민을 ‘유도하고 구슬리며 매혹하면서’ 위기를 극복했다.
저자는 민주주의 체제가 언제나 번영과 평화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상 속으로 곪아가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민주주의는 대체로 위기를 피하는 데는 미숙하고, 회복하는 데는 능숙한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은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미국인들의 자만이 드러난 것이라고 저자는 봤다. “어쨌든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남아 있지 않은 한, 누가 그런 인물(트럼프)에게 권력을 위임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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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