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조선소 복원 현장 가보니
조선통신사선은 17∼19세기 조선 일본 양국의 평화와 교류 증진의 상징이었다. 1811년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선이 오사카항에 정박했을 당시 일본 화원이 그린 모습(오른쪽) 등 당대 문헌 등을 고증해 복원하고 있다. 현재 복원 중인 통신사선(왼쪽)은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1주년인 10월 26일 진수식을 연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거대한 선박들이 건조·수리되고 있는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조선소 한 곳이 있다. 작업장 근처에는 두께만 1m에 이르는 거대한 소나무들이 쌓여 있고, 송진 가루들이 목수들 사이로 휘날렸다. 조금 더 들어가니 육중한 목선(木船) 한 척이 등장했다. 200년 전 조선과 일본의 바다를 오가던 ‘조선통신사선’이 복원되고 있는 현장이다.
통신사선은 당대 기술력이 동원된 조선 최대 규모의 선박 가운데 하나. 보통 200∼500명 규모였던 통신사 일행은 선단 5척에 나눠 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정사(正使)가 탔던 배가 현재 복원되고 있다.
건조되는 통신사선은 길이 34.5m, 너비 9.3m, 깊이 3m에 무게는 137t에 이른다. 조선시대 모습과 거의 흡사한 구조로 배의 주요 치수가 적힌 ‘증정교린지(增正交隣志)’와 선박 운항 실태를 기록한 ‘계미수사록(癸未隨사錄)’ 등 당대 문헌을 치밀하게 고증했다. 통신사선의 평면도가 남아있는 ‘헌성유고(軒聖遺稿)’에는 “배 밑은 너비가 한(一)자 반이 되는 네모진 통나무를 옆으로 열한 개를 잇고 가새(장삭)를 박는다”란 기록이 있다. 복원 중인 통신사선 저판(底板·물에 뜨도록 만든 밑판) 역시 11개의 소나무를 촘촘히 엮어 배를 지탱하고 있었다.
통신사선은 조선시대 한선(韓船)의 전형이자 배 밑이 평평한 평저선이다. 이번 복원 과정에서 배의 앞쪽인 선수(船首)는 평면이 아닌 활처럼 40도가량 가파르게 휘어진 구조란 사실도 새롭게 확인됐다. 복원 팀을 이끌고 있는 홍순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금강송 중에서도 송진을 많이 머금고 있어 썩지 않는 적심 부분을 주로 활용해 품질과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공정은 약 83%. 저판과 좌우 외판을 비롯해 선수와 선미 등 배의 뼈대가 되는 작업은 대부분 마무리됐다. 배의 갑판에 올라서니 2중 구조로 된 양측 난간이 눈에 띄었다. 홍 연구사는 “안쪽 난간은 통나무로 돼 있는데 물막이 역할을 위해 이같이 설계했다”며 “개흙이 많은 우리나라 해안의 특성을 반영해 저판에 일부러 홈을 파놓는 등 복원 과정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를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영암=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